병어(瓶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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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미 / 수필가

병어 조림이 입에 당긴다. 병어를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몸값이 나가는 귀하신 옥돔이나 갈치는 눈요기만 하고, 고등어나 우럭처럼 오지랖이 넓은 것들만 대면한다. 낯가림이 두드러진 편이어서 좌판 위의 낯선 물고기마저도 아예 시선을 두지 않는다.

노르웨이 바다를 주름잡다 건너온 고등어의 근육질이 쫄깃해서 조카에게 몇 마리 건넸다. 정성도 무색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조카사위가 느끼한 맛에 반감을 한다는 거였다. 슬쩍 흘린 말은 병어 조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수더분한 외모와는 다르게 입이 까다롭다는 사실에, 입맛이 천차만별이니 탓할 일은 아니지만, 조카가 평생 치러낼 식사 준비가 버겁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외양에 걸맞게 미각마저 무던하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누가 선택해서 태어나는가. 노파심의 발로일 뿐이라고 애써 다독이며 어제도 먹었던 고등어를 냉동고에서 꺼내 놓는다.

자주 만나다 보면 정이 든다는 것은 사람 관계에서나 이루어지는 일이다. 새록새록 정이 쌓여 도타운 인연이 된다. 음식과의 인연은 상반되는 현상이 벌어지니, 자주 먹다 보면 맛있다는 생각은 멀어지고, 질리기도 하고 급기야는 물려서 쳐다보기도 싫다. 하여,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언정 뇌가 부추기는 날이 매일은 아니다. 

어물전 고등어를 흘깃 외면하고 기웃거리는데 병어라는 글자가 번뜩인다. 예전에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겠지만, 시선은 딴전이었다. 통성명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조카사위 덕에 잴 것도 없다고 병어와 썸을 탄다. 이미 병어 조림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필시 인연임이 분명하다고 설렌다. 찬찬히 살피니, 등도 배도 툭 튀어나온 마름모꼴에 납작한 몸통이 첫눈에 반할 외모는 아니다. 게다가 입도 작고 뾰족해서 먹이를 오물거렸을 터이다. 소음인처럼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에 소화기관도 약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화통하게 큰 입을 가진 매기는 ‘입’이라 명명하고, 소심해 보이고 옹졸할지도 모르는 병어의 작은 입은 ‘주둥이’라고 칭하나 보다. 등 쪽의 청색은, 등 푸른 생선 고등어에 비하면 언감생심이다. 배부분의 은 빛깔도 사이키 조명처럼 눈부신 갈치에 비하면 백열전등 빛이랄까. 어쩌랴, 첫인상으로는 낙제다.

주춤거리는데 어물전 주인이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서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호불호가 갈리는데 ‘거의 없다’는 건 온전히 맛있다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대중이 좋아하는 고등어를 마다한 조카사위가 병어 조림을 선호한다는데 그 말이 더 믿음이 간다. 먹어봐야 맛을 알지, 카드를 쑥 내밀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병어 조림 냄비가 아우성친다. 비린내를 물리치고 매콤 칼칼한 향이 코끝에 척 달라붙는다. 후각이 반색한다는 건 단연코 맛있다는 신호다. 눈이 혹한들 그건 맛과는 별개다. 눈속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접시 위에 무 도막 몇 점에 벌건 양념을 뒤집어쓴 병어가 떡하니 놓였다. 떼로 몰려다닌다고 했는데 ‘병어(兵魚)’라 하면 좋겠네. 혈혈단신이어도 장군으로 영전했다면 병어가 좋아할까. 병어가 낯설다고 내숭 떨 일은 아니기에 젓가락이 분주해진다. 납작한 몸통에 비해 기대 이상으로 살집이 통통하다. 잘 물러지지 않는다는 병어의 살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서양에서 butter fish라 명하는 이유를 알겠다. 뜨거운 밥에 먹어야 제맛이라 하여 국물에 쓱쓱 비벼서 숟가락까지 삼키랴. 바닥에 깔려도 진국은 내게로 흐른다고 말하는 무 한 입 베어 물면, 젓가락은 하직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꼬시’라는 뼈가 연한 병어를 내년 산란기, 여름을 기약하는 건 횟감으로도 벌써 찜했음이로다. 

조카사위를 입맛이 까다롭다고 판단한 건 불찰이었다. 병어 조림을 맛보지 않고서는 판단을 보류할지어다. 절대 미각이다. 아들 두 녀석이 아빠가 만들어 준 요리를 좋아한다니, 아이들의 입맛을 맞춰주는 건 조카사위 몫이라는 낭보다. 

외양으로 판단하는 건 섣부른 일이다. 겪어보지 않고서야 거절할지, 여지를 남길지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사람만의 일이 아니니, 진국인 병어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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