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황금을 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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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다시 수확의 계절이다. 이리저리 과수원을 돌며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과 눈을 맞췄다. 화답이라도 하듯 햇살에 차별 없이 구석구석 빛난다. 봄부터 얼마나 험난한 시간을 보냈는가. 자연의 몫의 8할이라는데 올 따라 폭염과 폭우, 태풍... 어느 하나 작지 않은 위력 앞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것들이 아닌가. 아! 문득 깨달았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 앞에 귀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매일 오는 아침이지만 똑같은 아침이 아니듯, 때 되면 익는 귤이지만 똑같은 귤은 아닌 거다. 어제를 살아 오늘의 새로운 만남인 거다.

귤 한 알이 귀하디귀한 시절이 있었다. 대학나무라 불렸을 만큼 귀한 작물이었다.

어린 시절, 귤이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매일 아침마다 텃밭 귤나무 사이를 돌아다녔다. 열과로 벌어진 귤이나 나방에 쏘인 귤을 찾기 위해서다. 거의 매일 돌았던 터라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지만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은 서너 개의 귤을 찾아내기도 했다. 귤껍질이 벌어진 사이로 주황빛 살점을 본 순간 그 희열을 어찌 표현할까. 쏜살같이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그것도 허락받은 다음에야 귤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갑 한 갑 아껴먹던 그 행복감에 침이 고여 온다. 요즘 아이들에겐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절 이야기다.

이쯤이면 제주들녘은 잘 그린 유화그림 같다. 섬 전체를 두르고 있는 노란 감귤 밭은 산과 바다와 어우러져 더욱 원색의 강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일까. 귤 따기 체험 관광객들도 꽤 많아 보인다. 이래저래 수확을 기다리는 감귤 밭은 농부들의 크나큰 보람이다. 한해의 수고가 기쁨과 행복으로 마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어머니는 올해도 익어가는 귤을 보면서 기대반 한숨반이다. 노지 귤 농사로 반세기를 보낸 어머니는“미깡 값은 그때나 이제나 그 마니, 농약 값이영 인건비들은 열배, 스무밴 올랐쭈게. 경해도 때 되민 다 폴아 진다. 걱정 허지 말라.” 때맞춰 인부를 구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러지도 못한 현실에 푸념 섞인 말씀이다. 어디 귤뿐이랴.

넉넉한 들녘만큼 농부들 마음 역시 넉넉하길 바란다. 반복되는 해거리로 수확량이 적다할지라도 반면 풍작일지라도 격정의 시간을 건너온 만큼 수확을 했으니 좋은 값으로 결실을 맺는 건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농부의 발소리가 잦아진다. 부지런한 발소리만큼 웃음소리도 가득했으면 좋겠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황금을 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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