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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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한 생명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적 조건이 환경이다. 생활 주변의 상태로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사람에 국한됐던 것이 환경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각종 동식물로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한 생명에게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불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새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제주의 산과 들에 나가 보면, 기슭이나 빈터 군데군데 대나무(세죽)가 빽빽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옛날 집이 들어섰던 터일 것으로 보인다. 아마 집의 뒤뜰쯤이 아닐까. 대나무숲은 한겨울 모진 바람을 막아주었음 직하다. 대나무는 엄청나게 번식하므로, 더러는 잘라내어 바구니나 소쿠리 같은 그릇을 만드는 데도 유용하게 썼으리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집이 버려져도 대나무숲은 남아 있다. 영역을 넓혀가며 더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는 무탈한 모습이다. 물을 주거나 흙을 북돋우거나 거름을 할 손도 없다. 자연이 내려주는 비와 이슬을 받아먹고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저렇게 자라 한 군락을 이루지 않는가. 나고 자라온 환경이니 새로운 시련 따위도 없을 것이다. 워낙 강한 식물이라 기세등등하다. 환경을 바꾸지 말고 웬만하면 그대로 사는 게 좋다. 순리다.

약초는 원적지가 산이다. 아마 사람이 심어 가꾼 것보다 약효가 탁월하니 산삼을 캔다고 심마니들이 발품을 파는 것일 테다. 몇십 년 생은 입으로 치는 게 값이 아닌가. 비단 삼만인가. 수많은 약도 대부분 심산유곡에서 캐어내는 것들이다. 산의 정기를 먹고 자라니 그만큼 약발도 셀 것이다. 싹 터 자랄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환경을 바꾸지 않고 자연조건 그대로. 진품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임을 헤아리게 한다.

알에서 부화시켜 꿩을 새끼 때부터 기른다. 사슴 농장을 만들어 사육해 몸을 보한다는 녹용을 약용으로 얻는다. 하지만, 이도 산야에서 풀과 나뭇가지를 먹으며 제멋대로 자란 자연산과 비교하는 것은 턱없는 일일 것이다. 자연에서 자란 것이 갖는 억센 힘, 사람의 몸을 보양(補養)할 강장(强壯)의 영양을 가질 것을 우리는 믿는다.

호랑이 새끼를 사람의 손으로 사육하면 자그마치 야성을 잃는다고 한다. 맹수의 본성이 실종되는 것으로 순치(馴致)된 때문이다. 허우대를 키워도 종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지 못하니 숲으로 내보내지 못한다고 한다. 사냥의 기능 없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수단이 달리 있을 리 없다. 바로 환경을 바꾼 결과다. 야생일수록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마땅하다.

열대산 외래종인 게발선인장과 안시리움, 인삼팬더를 반려 삼아 아낀다. 한여름 거실에서 베란다로 내놓아 남쪽 창에서 들어오는 볕을 마음껏 쬐게 했다. 며칠 전 물을 주며 들춰보다 깜짝 놀랐다. 잎이 무성해진 데다 없던 꽃까지 피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옮겨 준 것인데, 강렬한 ‘볕’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종들이 원래 있던 그대로에 가까이 다가간 셈이다.

한국인은 예외 아닐까.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민족이다. 갑자기 누리는 부(富)로 못 살던 지난날을 반추하는 것이야말로 호사 중의 호사라. 이 경우 ‘있는 그대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월등한 환경, 좋은 세상을 만들었잖은가.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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