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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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시인/수필가

“할머니, 술잔을 어디에 부어요?”

“무덤 위 아무데나 부어라. 할아버지는 이젠 어느 곳에 드려도 잘 마실거야! 그런데 할아버지께 인삿말도 하면서 드리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예, 알았어요. 할아버지 술 한 잔 드시고, 건강하게 사세요!”

나는 어떤 할머니와 손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함께 있던 가족들도 폭소의 바다에 빠졌다. 당연한 일이다. 아이는 할아버지 생전에 하던 말버릇대로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렸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 아이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져버렸다.

경계선이란 무엇일까? 환절기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무더웠던 여름이 서서히 자연스레 어느 경계를 넘더니 서늘하고 상큼한 절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환절기를 지나면 또 다른 세계로 바뀌는 모습이 항상 새롭게 다가온다. 이 환절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이어 넘기는 묘수를 자연은 비밀히 알고 있다.

우리 삶에서 경계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간의 경계는 처절하게 엄격하다. 아들이 아버지의 경계선을 침범하면 안 되고 남편이 부인의 경계를 넘으면 안 된다. 부하가 상사의 선을 넘으면 무례하다고 불이익을 당하고 도덕이 법률의 경계를 넘으면 범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경계선을 넘으며 삶의 현장을 왔다 갔다 한다. 모든 사람은 하룻밤에 3천 번의 꿈을 꾼다고 한다. 어떤 때는 매우 얕은 잠 속에 있고 거의 깨어있는 경계선에 있기도 한다. 그때 꿈을 기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아침에 꾼 꿈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기억나는 꿈은 거의 없거나 희미하거나 비론리적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배우는 첫 번째 경계선은 가정 내에서 부모와 관계다. 가정에서 “내 자식이니까, 내 자식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런 생각을 자주 갖게 된다면 부모도 경계선에 대해 눈을 떠야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경험하는 경계선에 대한 이런 얘기가 있다. 『사람이 일생동안 백만원이라는 돈을 사용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날 때 백만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시다. 그런데 갓난아이한테 백만원을 주고 마음대로 쓰라고 할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가 백만원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있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십원을 관리 할 수 있을 때 십원을 주고, 천원을 관리할 수 있을 때 천원을 돌려주면서 아이가 성장하는 것에 맞춰 맡은 돈을 적절하게 돌려주다가 나중에는 백만원을 모두 돌려줘야 하는 것이 부모역할 인 것 같습니다.』

내 것을 지키면서 자녀의 것을 자녀의 성장에 맞춰 내어주는 역할이 부모역할이며 이는 부모자녀간의 건강한 경계선을 의미한다. 부모는 시간이 되면 자녀와 경제적·정서적 분리를 해야 하므로 미리 준비해야한다.

경계선을 지킨다는 것은 분별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가족의 분별력의 경계선은 남편은 부인을 사랑하고 부인은 남편을 존경하며 자녀는 부모에 효도하고 부모는 자식의 기를 꺽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삶의 핵심과 분별력을 잘 갈파하고 있는 문구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주는 교훈은 공통적으로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세계 너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왕자는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눈은 장님이야. 마음으로 찾아야 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이고 만져지고 사용할 수 있는 것에 집착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할 때 놓치게 되는 무수히 많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매번 망각하는 존재다. 어린왕자는 그런 인간의 속성에 파고들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양에게 정성을 쏟고자 한다면 상자 속 보이지 않는 양이 어떤 상태인지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 봐야한다.

보들레르는 ‘창들’이란 시 속에는 밝음 보다 어둠이, 열린 창보다 닫힌 창이 강조된다. 보이지 않은 어둠과 닫힌 창문이 오히려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게 하고 너머의 대상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들어다 봐야 비로소 나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주류가 경계를 넘어서 비주류의 세계로 떠나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로 접어들고 가을이 되면 겨울로 이어진다. 나뭇잎이 낙엽으로 변화하는 것도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경계의 넘음이고 자연의 이치다. 궁극적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경계선을 넘는 것은 영생을 향한 자연스러운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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