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를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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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농업인 · 삼성학원 이사장

초가을 햇살 아래에서, 호미를 씻는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밭고랑, 이랑 넘나들며, 온갖 잡초 걷어내고 뽑아내느라, 흙먼지 켜켜이 내려앉은 기역자 호미들, 내내 기특하면서도 짠했다. 간만에 물로 씻어 창고에 내걸고 나니, 덩달아 몸과 마음 가볍고 개운하다

호미는, 농부와 한 몸이다.

농작물들을 지켜 내는 최전선의 불침번들이다. 일 년 농사 절반이, 잡초들과의 지난(至難)한 싸움 아니던가. 애지중지 보살핌받는 작물들과, 호시탐탐 작물들 몫의 자양분들 엿보는 천덕꾸러기 잡초들과의 ‘오징어 게임’. 생존을 건 ‘치킨게임’이라, 추호도 양보할 수 없다.

그런데 기다리던 택배처럼, 휴전의 시간이 왔다.

서늘해진 기온에 잡초들 시름시름 드러눕기 시작하고, 제초의 고단함으로 농부들이 탈진 직전 그 어간(於間), 음력 절기상 처서(處署) 즈음의 ‘호미씻이(세서연/洗鋤宴)’가 바로 그 때이다.

제초 부담 덜하니, 일 년 중 가장 한가하다. 말 그대로 ‘어정 칠월, 건들 팔월’. 어정거리며 칠월 보내고, 건들거리며 팔월 보내는 농한기인 것이다. 중노동의 농번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노동 단계로 진입하는 전환점. 전반부의 재배기에서 후반부의 수확기로 옮겨가는 과정에 설정된, 시간적 통과의례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다 갔다. 감귤 수확 전 농사일도, 농약 살포 한두 번 정도면 끝이다. 더구나 병해충들도, 가을 서슬에 옴짝달싹 못하니, 독성의 살충·살균제도 필요없다. 자외선 차단하는 과피(果皮) 보호제와, 열매의 색깔과 당도 높여주는 영양제면 마무리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알알이 감귤들에게는, 소비자들 맞기 위한 ‘꽃단장’인 것이다.

그나저나, 손에 땀범벅된 흙 한 번 안 묻히고, 민초들의 혈세로 밥벌이하는 정치판 사람들의 행태가, 갈수록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三苦)로 국가경제의 허리 휘고, 시도 때도 없는 북한의 무력 시위와 도발,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등으로 민심이 흉흉한데, 그들만의 정치판에서 싸움질에 패악질이다.

취임 반 년이 지나가는데도, 낙제점 벗어나지 못하는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공공연한 국정 딴지걸이. 때문에, 나라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담론이나 민생 우선의 여야 소통은, 꿩 구워 먹은 자리처럼 행방이 묘연하다.

급기야는, 죽은 공자가 뒤돌아 앉아 웃을 대통령 조문(弔問) 공방, 야당 대표와 영부인의 ‘사법리스크’ 들을 놓고, 사사건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막장정치’의 추태(醜態)를 보여주고 있다.

오호! 애재(哀哉)라!

유령(幽靈)처럼 발호(拔扈)하는, 이 나라 삼류정치의 끝은 어디쯤일까. 삽상한 바람결에 높아가는 비췻빛 하늘. 분노와 참담함으로 고개를 푹 꺾는, 민초(民草)들의 비애(悲哀)가 시나브로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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