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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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건 수필가

일간신문에 수필을 10여 편 이상 발표하였다. 그때마다 내 이름 밑에 ‘수필가’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오랫동안 수필을 공부하면서 개인 수필집을 내기도 하였지만 수필이란 문학의 한 장르를 전부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하여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하여 노력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 있게 ‘수필가’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느낄 때가 있을 것인가. 나의 이름은 나를 대표하는 명칭이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라면서 시기와 상황에 맞게 이름 말고도 자신을 호칭하는 다른 이름도 갖게 된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학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각자의 직업에 맞는 호칭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름과 호칭들은 타인과 나를 구별해 주기도 하고 나의 의무와 책임을 알려 주기도 한다.

논어 13장 3절에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있다. 소위 이 정명론은 명칭이 실제에 맞도록 바로잡으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관련된 문장, ‘명불정즉 언불순(名不正則 言不順)하고 언불순즉 사불성(言不順則 事不成)’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 말은 ’이름이 실상에 맞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다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름이 있으면 마땅히 그 이름에 맞게 실질과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실상부(名實相符)란 말이 여기에 어울릴 것 같다.

조직에는 다양한 직책이 있고 그 직책에는 해야 할 직무가 있는데, 그 직책에 맞는 직무가 제대로 수행되는 것이 정명(正名)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이 정명의 중요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회사에서 ‘사장’이면서도 자기 기업에 대한 책임이나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면, 어떤 사원이 ‘과장’에 승진되었는데도 과장에 준하는 업무 처리를 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그 회사나 개인에게는 발전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어느 여자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고3에 진학하게 되면 전원을 대상으로 개인 면담을 실시하고,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진로에 적합한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낸다고 한다. 대단한 열정과 정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 교장 선생님은 스승으로서 많은 존경을 받는 분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30년 이상 지키던 학교를 떠난 자연인의 신분이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에서 불리던 ‘교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때가 적지 않다. 은퇴 후 그런 호칭을 들을 때면, 왠지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단순히 명예를 좇는다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삶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지금도 갖고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도 더 많이,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수필 쓰기와 성경 공부에도 열정을 다하고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여행을 부지런히 다닌 것도 실은 내 부족한 능력과 인성을 채우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 이름에 붙어 있는 ‘교수’라는 명칭과 나와의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또한 한 가정의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았는가 하고 자문도 해 본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나는 내 자식들에게 자상하지도 못하였으며 가정사에는 좀 무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정년 후 읽은 다산(茶山) 정약용의 글을 통해 그의 자상하고 세심한 자식 사랑과 교육법에 공감하였으며, 나 역시 ‘부드러운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출간한 내 수필집 제목이 『부드러움이 샘물처럼』이라고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편으로서의 나는 또 어떤가. 젊었을 때는 ‘부부의 사랑은 인생 최대의 예술품’이라는 말을 음미하면서 살았으며,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이지만, 부족한 점도 많았던 것 같다. 무뚝뚝하고 자기 일밖에 몰랐던 남편과 50년 이상 함께 살아오며 우리 집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 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아내와 말년을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이름과 역할에 걸맞게 명예롭게 사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내 삶을 일으킨 가장 귀한 가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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