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의 아침》 발문(跋文)
《그 바다의 아침》 발문(跋文)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노라면’의 필진 박영희 작가가 수필집 《그 바다의 아침》을 냈다. ‘칼럼의 수필화’를 지향해 온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어 왔음을 아는 필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공유할 작은 지면을 내기로 했다. 여러 해를 동인으로 문학을 함께한 감회 무량하다. 표제작의 한 부분에 불과해 아쉽지만 일독했으면 한다.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눅눅한 갯바람으로 목덜미에 솜털이 곧추 선다. 해무가 얄브스름하게 수면 위로 내려앉은 새벽, 아직 바다는 깨어나지 못한다. 밤새 어선들이 은밀한 속살을 헤집어 놓았다. 품에서 키운 것들을 떠나보내려 고단했던 바다도 신열로 열꽃을 피웠을까. 밤을 밝혔던 어선들이 포구로 돌아가고, 몸살을 앓는 그도 혼곤한 늦잠에 빠졌는가. 숨죽여 잔잔하다. (중략)

엇나간 풍경으로 흥겹던 사유의 숲에 심란한 바람이 분다. 예정 없이 숲에도 폭풍은 휘몰아친다. 덤불 속에 핀 인동꽃의 달콤한 향기가 아니었다면, 눈 감고 귀 막은 채 난파선으로 침몰했을지 모른다. 언제가 이곳도 개발이라는 수레바퀴가 지나가겠구나.

멀리 포구에서 부지런한 어선 한 척이 하얗게 물살을 가른다. 몸 가벼운 숭어 새끼 한 마리가 허연 배를 드러내며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내 고단했던 깔깔한 눈꺼풀이 환하게 열린다. 그의 자그마한 몸짓이 잔물결로 일렁이며 안개 걷히듯 팔팔한 생명력으로 파동 친다. 언덕에선 초여름 연록의 풍경이 수런수런 말을 걸어온다.

주춤주춤 노 저어 가지 못하던 내 안의 바다, 격랑의 물결에 숨 고르며 다독이던 시간이었다. 다시 멎었던 시침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 태풍에도 꿈쩍 않고 침잠에 들었던 갈색의 해조 숲에 치어들의 지느러미 짓으로 술렁거린다. 기지개 켜는 파도는 먼 항해를 떠나기 위한 숨 고르기인가.』?〈그 바다의 아침〉 중에서

『바다 위로 아침이 열리는 들머리. 밤의 가파른 능선을 넘어온 시간이 거대한 우주 속으로 진입하더니, 마침내 조화 무궁한 질서의 세계에 이르는 순간이다. 박영희는 물살을 가르며 머뭇머뭇 항진해 온 인생의 바다 앞에서 자신과 해후한다. ‘격랑의 물결에 숨 고르며 다독이던 시간이었다,’며 지난 여로를 반추한다. 눈에 들어오는 치어 떼의 술렁이는 지느러미와 먼 항해를 위해 기지개 켜는 파도의 숨 고르기, 나른한 피곤이 뿌듯한 충만으로 출렁이며 아침으로 깨어난 이 역설의 바다, 화자는 그 위에 과부하로 실린 인생의 닻을 다시 들어 올린다.

표제작으로 올차다. 수필에서 자칫 대립을 세우게 되는 ‘체험의 허구 수용’의 문제에 대한 답을 이 작품에서 찾으면 어떨지. 줄글인 수필에 촉촉한 시적 정서가 융합·혼효함으로써 이 한 편이, 수필과 시를 절충한 퓨전으로 재탄생했으니 하는 말이다. 오늘의 우리 수필은 포만한 듯 속이 비어 허하다. 가독성을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은 수필가 모두의 책무다.

느슨한 행보가 감정선을 건드렸다. 그게 운율을 타 목마름을 적셔주는 정서적 호소력·페이소스(pathos)가 주는 울림이 물결로 남실댄다. 무미한 직설에서 떠나 묘사적 수사를 빌림으로써 수필적 완성도를 높은 층위로 끌어 올렸다.

표현이 참 정교하다. 이렇게 언어가 긴장하면 문장은 되레 적막하는가. 박영희가 집요하게 세공으로 얻어 낸 언어 연단(鍊鍛)의 축적물 같다.』(김길웅의 <작품 해설> 중)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