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수 해병 2사단장 “위국헌신으로 도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
조영수 해병 2사단장 “위국헌신으로 도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어려운 가정형편 상 사관학교로 진학…제주방어사령관 꿈 키워
고향 제주에서 해병 9여단장 역임…농번기 대민 지원에 앞장
탁월한 작전 지휘능력 인정받아 지난 6월 해병대 2사단장에 취임
조영수 해병대 2사단장이 전방 작전지역을 방문, 전투 태세를 지휘하고 있다.
조영수 해병대 2사단장이 전방 작전지역을 방문, 전투 태세를 지휘하고 있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한 해병대는 그해 12월 29일 제주도로 이전했다.

해병대가 제주에 주둔한지 7개월 만인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발발하자 젊은 학도들과 청년들로 구성된 3000여 명이 해병대 3·4기로 지원했다.

이들은 1950년 9월 1일 제주항에서 출항,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9월 1일을 ‘제주 해병대의 날’로 지정, 나라를 구한 제주 해병용사들을 기리고 있다.

조영수 해병대 제2사단장(55)은 ‘무적해병’의 명예와 전통을 이어받아 정예 해병을 육성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3등으로 졸업

조 사단장은 1967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출생했다. 강정초와 중문중을 졸업한 그는 제주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탓에 3년간 장학생으로 선발해 준 남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87년 학비가 전액 무료인 해군사관학교(45기)에 입학했다. 성적이 우수해 130명의 동기 중 3등으로 졸업, 1991년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집안이 어려웠고 하숙할 돈도 없어서 대학 진학 대신 해사를 선택했습니다. 입교하자마자 진로를 해병으로 정했습니다. 해군보다 해병은 훈련이 세고 고달팠지만, 훗날 고향 제주에서 제주방어사령관(현 해병대 제9여단장)을 하겠다는 꿈과 희망을 품었습니다.”

조영수 해병대 제2사단장이 지난 6월 20일 경기 김포 연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경례를 받고 있다.
조영수 해병대 제2사단장이 지난 6월 20일 경기 김포 연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경례를 받고 있다.

▲꿈에 그리던 제주도 군사령관이 되다

그는 2018년 12월 꿈에 그리던 해병대 제9여단장으로 부임, 제주도 군사령관이 됐다.

“사관학교에서 인생의 목표를 정해 정진한 결과, 제주도 통합방위를 책임지는 직책을 맡게 됐습니다. 군사령관으로서 고향 발전을 위해 43개 전 읍·면·동을 방문,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대민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의 약속으로 해병대 군악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다. 읍·면 체육대회는 물론 벚꽂축제 등 각종 축제와 행사에 제복을 입은 해병대원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멋진 연주를 선사했다.

마늘과 감귤 수확철에는 전 장병들이 일손 돕기에 나섰다. ‘빨간 명찰’을 단 장병들 덕분에 마늘 수확에 힘이 부쳤던 고령 농가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

그는 9여단장 당시 도내 보훈·안보단체 회원들을 부대에 초청, 장비를 소개하고 무적도(특공무술) 시범을 보여줬다.

6·25전쟁에 참전한 노병(老兵)들은 달라진 병영생활과 맛있어진 ‘짬밥’을 먹으며 옛 추억을 회상했다.

▲헬기 추락사고 조사위원장을 맡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실 행정관(대령), 해병대 1사단 7연대장에 이어 2017년 12월 준장으로 진급, 해병대 전력기획실장을 맡았다. 당시 중대한 사고를 수습해야 했다.

2018년 7월 17일. 경북 포항 제6항공전단 비행장에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추락했다. 이륙 4초 만에 회전날개가 분리돼 10m 아래로 추락, 장병 5명이 순직한 참사가 발생했다.

해병대는 조영수 전력기획실장을 사고조사위원장으로 임명, 헬기 사고를 조사하도록 했다. 순직한 조종사는 비행시간이 3300시간에 미국 비행학교를 수료한 베테랑이었다.

조 위원장은 5개월 동안 조사 끝에 프랑스 업체가 납품한 ‘로터마스트’ 부품에 결함이 있는 것을 밝혀냈다.

‘로터마스트’는 엔진에서 동력을 받아 회전날개를 돌게 하는 중심축으로 프랑스 제조사는 공랭식(空冷式) 대신 수랭식(水冷式) 열처리를 해 균열이 발생했다.

그는 “공기로 천천히 식혀가며 열처리를 하지 않고 액체로 처리를 하면서 부품에 균열이 발생, 헬기가 이륙하자마자 회전날개가 떨어지면서 추락했다”며 “철저한 조사로 제조사인 프랑스 업체가 잘못을 시인했고,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사고 규명에 이어 사고 수습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조영수 해병대 2사단장이 전방 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조영수 해병대 2사단장이 전방 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가 수호와 국민 보호에 앞장

고향에서 1년간 군사령관을 역임하는 그는 지난해 5월 소장으로 진급,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에 부임했다.

육·해·공군, 해병대 등 각 군의 전투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귀순 또는 월북 사건 발생 시 현장 점검으로 개선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자리다.

작전과 전략, 정책, 조직관리 등 해박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군사 경험, 탁월한 작전 지휘능력을 갖춘 그는 지난 6월 해병대 제2사단장에 취임했다.

해병 2시단이 맡고 있는 한강 하구는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67㎞ 구간이 중립수역이다.

지난 8일 태풍 ‘힌남노’로 강화도 북쪽 한강 하구의 물이 불어났고, 한밤중 부유물에 섞여 떠내려 오던 20대 남성이 해병대 초병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초병들은 낯선 소리를 감지한 후 열영상장비(TOD)로 사람으로 추정되는 열점을 포착했다. 이어 고속단정을 이용해 이 남성을 구조했다.

당시 경계·감시에 실패했으면 조류를 따라서 이 남성은 북한 해역으로 떠내려 갈 수 있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뻔 했다.

조 사단장은 “적을 코앞에 두고 있는 2사단은 전군에서 가장 넓은 작전구역을 담당하고 있다”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인한 훈련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전통을 이어받아 국민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울 때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버팀목이 돼 주며, 70년 동안 끈끈하게 맺어온 화합과 상생을 기반으로 수도권 서부를 책임지는 해병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해병 2사단은 지역주민들을 위해 군사보호시설구역 규제 완화와 QR코드를 도입, 민간인 통제지역 출입 체계를 간소화했다.

그는 “최전방을 책임지다보니 지난 추석에도 고향 제주에 가보지 못했다”며 “35년 동안 타지에 살고있지만 제주인이라는 자긍심은 항상 잊지 않고 있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제주도민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이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하며 조국을 수호하는 해병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