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가 시작되는 길의 모퉁이는 ‘어귀’다. 어귀에 ‘어귀돌’이라는 큰 돌을 쌓았다. 삶의 지혜가 묻어난 제주 지역만의 독특한 대문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돌덩이의 숨결이 느껴진다.
울담과 밭담, 원담, 산담, 성담…. 제주사람들의 아름다운 지혜의 산물이다. 제주속담에 ‘짐진 놈이 팡을 ᄎᆞᆽ나’라는 말이 있으니, 짐팡이나 물팡, 디딜팡 등은 정낭 못지않은 제주의 독특한 돌의 문화다.
네모나게 깎은 돌을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 모퉁이나 문 앞에 세워놓고, 지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한 것이 ‘짐팡’이다. 또한 물허벅을 내려놓기에 편하도록 돌을 세워놓은 것이 ‘물팡’이지만, ‘디딜팡’까지도 있었다.
문밖에 마련해놓은 ‘짐팡’은 짐을 지고 찾아온 사람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정체를 초령 들어오게 한 것이고, 집에 들어서는 올레 모퉁이에 세워놓았던 ‘짐팡’은 누구든 지나가던 사람이 잠시 무거운 짐을 내리고 쉬어가도록 편하게 해놓은 것이다. ‘짐팡’이라는 것이 후한 인정의 풍습으로 빚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낭’이 제주의 믿음과 곧음의 상징이라면, ‘짐팡’은 인정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짐팡’은 집안사람이 이용하기 위해 마련했을 것이나 전용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조드는 사름 산지물에 가도 궁근팡에 앉나’라는 속담도 있듯이,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빨래터에 가서 넓직한 팡을 차지해서 빨래하다 ‘아이고 애기야 는 뽈것도 읏인 거 닮은게 저기 저 족은 팡에 강 호라’고 당찬 아지망에게 쫓겨났던 추억을 간직할 여성도 있으리라.
어린 소녀가 물허벅을 바구니에 올려놓다가 실수로 물허벅을 깨뜨리고 ‘물팡’이 적당치 않게 만들어졌다고 원망했던 일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엊그제 추석 명절을 보내고 나니,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명절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쉼팡에서 한 숨 돌리며 휴식을 취해보자. 지친 몸을 잠깐 쉴 수 있게 만든 쉼팡에서 말이다.
인생의 쉼표를 갖는 삶. 그 쉼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아보고 자신을 알아차리는 깨달음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은 행복한 삶의 순간이 아닐까.
무엇이 그리 바쁘던가. 한 번쯤 쉬어가면 어떠리. 기계도 기름칠하고 쉬게 해줘야 별 무리 없이 잘 돌아가지 않는가. 너무 많은 걸 짊어지고 하나라도 내려놓으면 큰일 날 듯 하지 말자.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인데. 과속으로 달리던 가속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면 또 다른 가치와 의미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쉼팡’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소진된 에너지의 충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