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고장(金銀花)을 덖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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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시인·수필가

지금 뭐하고 계세요?”

운동고장 따고 있습니다.”

운동고장이 뭡니까?”

표준어로는 인동초꽃입니다. 금은화라고도 하지요. 후광 김대중 대통령의 상징어가 인동초입니다.”

그래요? 주변에 퍼지는 향이 그윽하군요. 난처럼 향기로운데요.”

. 차로 마시면 더욱 좋습니다.”

밭두렁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인동초꽃을 조금 채집하고 있는데 지나던 부부 관광객이 호기심 있게 말을 건네 왔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한약방에서는 운동고장 말린 것을 사들였다. 틈나면 친구들과 인동초꽃을 따다가 말리던 기억이 아스란 하다. 인동초는 꽃을 따서 거꾸로 물고 쪽 빨아들이면 단물이 입안으로 쏙 들어오는데 양이 적어 감질나지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한테는 인동꽃의 단물을 음미하던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10여 년 전에 서귀포 중산간 한 연수원을 방문했을 때 부장님이 차를 권했다. 너무 향기롭고 맑아서 여쭈어 보았더니 인동초 차라고 했다. 그런 기억에 작년부터 인동초를 따다가 차를 마셔보고 있다.

인동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약초다.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이겨내는 많지 않은 식물 중의 하나로 겨울에도 곳에 따라 잎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동(忍冬)이라고 한다. 금은화라고도 불리며 옛부터 한방에서 약초로 사용돼 왔던 생명력도 강하고 그만큼 약효도 좋은 약용식물이다.

인동초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모습처럼 예쁜 이야기가 금은화(金銀花)에 실려 있다. 부여 사비성의 구드래 나루건너 평화로운 두메산골 마을에 마음씨 곱고 부지런하며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의좋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근심걱정이 있게 마련인지 이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항상 마음이 편치 않던 차에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자식이 있을 거라 했는데, 백발노인의 현몽대로 잉태해 출산을 해보니 쌍둥이 자매였다. 이들 부부는 자매의 이름을 금화은화라 하고 정성을 다해 길렀다. 정다운 두 자매는 그림자처럼 같이 행동하며 늘 우리는 같은 날 태어났으니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살다 같은 날 죽자며 사이좋게 자라났다.

어느 날 갑자기 언니인 금화가 원인모를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동생인 은화는 온 정성을 다해 언니인 금화를 간호했지만 불행하게도 은화마저도 같은 병을 얻었다. 이들 자매는 우리가 죽어서 약초가 돼 우리들 같이 병들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하자고 했다. 끝내 같은 날 죽은 금화와 은화가 묻힌 무덤가에서는 한 줄기 가녀린 덩굴식물이 자라더니 희고 노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며 향기를 그윽하게 내품었다고 한다. 여름에 노란색 꽃과 흰색 꽃이 피었는데, 처음 필 때는 흰색이었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금은화가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마을에 열병이 돌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은화의 말을 기억하고 그 꽃을 달여 먹자 열병이 낫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꽃을 두 자매의 넋이라 여기며 두 자매의 이름을 따 금은화(金銀花)라 불렀다. 그 후 사람들은 겨울의 북풍한설에도 잎이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다 해 인동이라 부르게 됐고 꽃은 해독, 해열 등 약용으로 쓰이게 됐다.

요즘은 남해안 지방에 가면 인동초를 넣어 담근 쌉쌀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막걸리를 내오는 식당들이 많이 있고, 인동주마을에 가면 눈물이 나오도록 확 쏘는 홍어에, 인동초 술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후광 김대중 선생이 삶과 죽음의 문턱을 숱하게 넘어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파란만장한 일생이 흔히 인동초에 비유되고, 그의 명연설 문구집 이름도 인동초. 지금은 우리 모두가 경제적으로 생태 환경적으로 인동의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련의 시기를 인동해 잘 견디면, 금세 꽃도 피고 생명이 샘솟는 계절이 오리라고 기대하면서, 오늘은 운동고장을 덖어 그늘에 말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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