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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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주

섬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천년의 역사를 가진, 날아오른 섬. 비양도가 그림 같이 떠 있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지붕 사이로 외갓집이 자리한 곳에 시선을 멈추다가, 해안가 산책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내 마음은 그 섬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떻게 이곳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들게 되었을까.

내 고향에서 펼쳐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설픈 사투리 연기에 웃음과 눈물로 나를 들었다 놨다 흔들었다. 해안가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사촌보다 더 진한 정을 나누며 사는 이야기가 그대로 어머니를 보여줬다. 바다가 삶의 터전이고 해녀를 천직으로 여기며 바람 불면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바람이 자면 물질로 평생을 살아온 여인들.

해녀들의 이야기는 넋을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었다. 어머니가 쓰던 것과 비슷한 테왁과 고무 옷, 물안경을 쓰고 바닷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울컥해졌다. 어머니도 저렇게 숨을 참고 생사를 오가며 바닷속을 더듬으셨겠지. 당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하여. 삶의 희로애락이 어우러지는 어촌 생활과 이웃사촌의 이야기는 내가 보고 겪은 생활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뱃사람 이야기는 외삼촌의 삶이었다. 젊고 예쁜 처녀의 해녀 설정에는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아마 희망 사항이 아니었을까.

갈수록 해녀들의 숫자도 줄고 나이도 지긋하다. 숨을 참고 바다 밑바닥을 살필 때면 지옥이고, 소라, 전복이라도 손에 쥐고 물 위로 나오면 그것이 천국이 된다. 의지할 것이라곤 자신의 가슴팍에 안긴 테왁뿐,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숨을 고를 때면 집 쪽을 바라보며 ~숨비소리로 힘을 얻는 해녀들. 뭍으로 나오면 입에 문 밥알도 뱉고 싶을 만큼 쓰디쓴 입맛이지만 갓 잡은 소라, 성게, 문어를 보며 입은 귀에 걸린다.

어머니는 비양도에서 나고 자라며 해안가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었다. 어느 돌 틈에 전복이 있는지, 어디쯤이 깊은지 얕은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 외갓집에서 며칠씩 묶을 때면 어머니가 물질하는 곳을 지켜보곤 했었다. 갓 잡은 성게 알을 내 입에 쏙쏙 넣어주고는 당신이 맛나게 먹은 듯 더 좋아하셨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할 걸, 껌벅이는 눈꺼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뜨거운 눈물이 볼을 적시고 있다. 어머니의 고단했던 해녀의 삶과 인생을 되돌아보니 코끝이 찡해지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다시 태어나도 만나고 싶은 그 얼굴 어머니.

어머니는 몸이 아프고 물질을 할 수 없게 되자 당신이 쓰던 테왁과 고무 옷을 지인에게 주었다. 호미며 비창도 건네주며 욕심내지 말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물질하라며 소중한 재산을 물려주듯 토닥거렸다. 하지만 어느 날 물질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에 가족을 잃은 것처럼 한동안 시름에 잠겼다.

어촌 사람들은 비양봉의 등대를 의지하고 날마다 기상청 소식에 귀를 쫑긋 세워 날씨의 세상 경전을 읽는다. 비바람 태풍도 그칠 때가 있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가 제 할 일이 있고, 웃는 날이 있으면 웃지 못하는 날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속 깊은 그들. 서로를 응원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위로하고 위안받는 이웃사촌들. 물과 바람과 햇빛에 순응하며 사는 그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한방 일침을 놓기도 했다. 나와 다르지만 나에게 없는 재능이 있고 그만의 삶의 방식과 살아갈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나도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위로하면서 꿈과 희망을 그려본다.

촬영지였던 해안가 갯바위에 앉아 어머니가 살던 집 쪽을 향하여 손을 흔들어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의 숨결이 손에 닿는 듯 파르르 떨린다. 안녕을 전하는 마음이 노을 속에 장밋빛으로 스며든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우리들의 블루스 이야기는 파도처럼 넘실대며 삶을 헤쳐나갈 것이다. 지금껏 엇박자로 휘청대던 나의 블루스도 그들처럼 하모니를 이루며 장단을 맞춰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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