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죽음을 예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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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인간과 동물은 차이가 있을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맞는 말일까?

동물들을 관조(觀照)하면서 종종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인간도 식욕을 채운 후 배설을 한다. 그렇게 동물과 똑같은 삶이다. 그런데 인간을 영장(靈長)이라 칭한다면 날짐승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요청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았을까? 어느 봄날 난 그 절박한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해 이 시간 녀석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이 밀려온다.

그날도 난 텃밭에서 채소 모종을 심고 있었다. 땀이 등을 적실 즈음 휴식을 위해 농막으로 향했다. 어쩌랴 텃밭에서 생활하려면 필요한 게 농막이기에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마련했다. 농막을 마련한 지 어느덧 8. 그동안 자연에서 숨을 쉬고 싶을 때 찾아가서 각종 과수와 채소를 가꾸며 풍성한 식재료를 얻을 꿈에 부풀었었다.

한두 계절이 지났을까? 풍성한 식재료는 고사하고 텃밭은 곶자왈로 변하고 말았다. 게으른 농부의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젠 텃밭을 곶자왈만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농막에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까치 한 마리가 농막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 이 녀석 봐라?’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아 발을 한 번 구르자 그제야 나무 밑으로 몸을 숨긴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다시 앞으로 나온다. 날아갈 의사가 없는 것 같아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폴짝나무 위로 올라앉았다.

작년이었나? 문득 정원에서 중상을 입은 직박구리를 구조했던 생각이 나서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전화할까 하다가 겉으로 봐선 멀쩡해 보이기에 관두었다.

며칠 후 다시 텃밭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농막 입구에 까치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내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으려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멀쩡해 보였지만 자꾸 다가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구조해 달라는 절박한 신호를 내가 놓친 것이다. 안타깝다. 구조센터에 신고하지 못했던 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까치와의 조우는 그렇게 끝났다. 하찮은 날짐승 한 마리에 웬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지만 모든 생명은 소중하기에 내 곁에서 생을 마감한 녀석이 좋은 세상으로 떠났길 기원해 본다. 녀석의 죽음이 농약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요인에 기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하면서 보낸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폭염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느낌이 든다. 곧 입추(立秋)를 알리는 신호이리라. 그럼 이제 가을도 머지않았다. 올가을에는 내 텃밭에서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을 맞닥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초보 농부의 하루가 그럭저럭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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