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동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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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신제주로 이사 와 가장 관심이 간 게 텃새 까마귀다. 숲을 갈아엎어 빌딩이 들어서면서 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런 변화 속에 깃들었던 까마귀들이 터를 잃고 산으로 쫓겨났다. 집과 먹이를 잃은 그들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까마귀들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까마귀들의 그 상실의 서사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짧게든 길게든 써야겠다는 의무감을 갖게 되면서 나는 ‘노형동 까마귀’를 시화(詩化)하기 위해 구상에 들어갔다.

가뭄 탓인지, 올여름 더위는 폭염의 연속이다. 가마솥더위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도 노형동 까마귀들은 하루 몇 번인가 날선 소리로 울며, 울며 허공을 가로지른다. 무엇을 놓고 저 악다구니들인가. 갉아먹기라도 할 듯 자극적인 소리다. 주민들이 그들의 속을 알 턱이 없다. 나무 그늘에서 땀 들이던 아파트 주민들 입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이 더위에 재들 왜 저러나! 참 시끄럽네.”

제주는 하루 다르게 제주 본래의 신비와 원시적 본래성을 잃어간다. 어쭙잖게 고질화한 개발 논리 때문이다. 섬의 허파인 숲, 곶자왈을 파헤쳐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다퉈 들어서면서 난개발이 제주의 민낯을 훼손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구석구석 진주군처럼 중장비들이 들어서면서 할퀴고 지나간 상흔투성이다. 어디를 가보아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제주는 지금 아물지 않을 깊은 상처의 아픔에 신음하고 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떠오른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 가슴에 금이 간’,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생기면서 번지를 뺏긴 새’, 비둘기는 끝내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새가 돼 버렸다고 했다. 산업화로 메말라 가는 현대의 인간 상실을 절박하게 빗댄 것이다.

노형동 까마귀는 당최 ‘성북동 비둘기’, 그것에 비할 바도 아니다. 천연의 숲들이 중장비의 이빨에 무지막지하게 해체되더니, 농부들이 따비로 일군 귤밭들마저 무참히 짓밟혔다. 몇 년 새 노형동은 시멘트 구조물들이 빼곡히 들어차면서 제주 제일의 번화가로 탄생했다. 들판이고 숲이고 경작지였던 이곳, 토지의 도시화는 자연이 문명에 밀려난 대참사였다. 지금 노형동엔 건물과 자동차와 상업과 물신 들린 사람들이 우글거릴 뿐, 이웃이 없고 인정이 없고 따듯하고 정겨운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웃음이 사라지고 없다. 사람 사는 곳에 온기가 없다. 슬픈 일이다.

까마귀들이 이곳으로 떼 지어 오는 이유가 있다. “언제 천연의 숲을 너희에게 양도한 적 있느냐, 조상이 깃들었던 우리의 본향이다. 옛 숲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단지, 그게 옛것에 대한 부질없는 향수나 감상이 아니다. 허공을 찢는 실지 수복의 결의로 무장한 날갯짓이다.

얼마 전, 노형동엔 38층 드림타워가 치솟았다. 제주시의 랜드마크다. 빌딩이 오르며 사람들이 시나브로 교만해지는 건 아닌가. 늦가을 바람 몹시 불던 날, 까마귀가 새카맣게 무리 지어 드림타워의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유유히 나부끼던 날갯짓을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그 후로 두세 마리 까마귀가 아파트 위를 낮게 날며 앙칼진 파열음을 쏟아낸다. 푹푹 찌는 더위도 아랑곳없다. 답을 못 찾으면 서울의 광장으로 날아가겠다는 퍼포먼스인가. 촛불을 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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