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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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첫더위 탄다고 한다. 날씨가 여름으로 무덥다. 땡볕인 데다 바람 한 점 없다. 하오로 넘어가는 때라 더위가 절정을 친다. 마트에 다녀온 아내가 선뜻 내미는 게 있다. ‘떡붕어빵아이스크림’. 목이 타는 데 눈이 번쩍거린다. 붕어 모양의 떡에 팥소를 넉넉히 넣고 우유를 첨가한 빙과류다. 팔과 우유의 조합에 얼음을 채웠으니, 나같이 나이 든 세대의 기호에 찰떡궁합이다. 입 안에 넣자 살살 녹는다.

몇 입 베어 먹는데, 홀연 동네 골목을 돌아 나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내린다. “아이스 께~끼.”

열두세 살쯤 돼 보이는 땅딸한 소년이 제 몸뚱이 만한 나무 상자를 어깨에 메고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거리나 골목을 돌며 팔던 빙과류. 내리쬐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발갛게 탔고, 흐르는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다. 걸음 반 뜀박질 반 그때마다 어깨에 멘 얼음 상자가 출렁거렸다. 1950년~60년대 여름이면 흔히 볼 수 있던 거리풍경이었다.

사카린과 향료를 넣은 물에 짧은 막대기를 꽂아 얼려 만든 아이스께끼. 그걸 목제 아이스박스에 잔뜩 넣어 파느라 거리를 누비고 뒷골목을 뒤졌다. 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이 대량생산되면서 사라졌지만, 그 시절엔 해마다 여름이면 만나던 풍물이었다. 1958년 시골에서 제주시 사범학교(교대 전신)에 진학했던 촌뜨기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의 장면으로 각인돼 있다.

호주머니에 든 게 없던 자취생이라 거듭되는 여름을 두고 몇 개 사 먹은 게 고작이지만, 아이스께끼를 외칠 때마다 소년의 목에 도드라지던 심줄과 먼 골목으로 잦아들던 지친 목소리의 여운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이글거리는 볕에 흐르던 땀, 지나치고도 한참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옆에 우리 아이들이 있어 떡붕어빵크림을 내밀었더니, 벌써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리다 웃는다. 한낱 빙과류인데 세대 간의 취향이 극명히 다르다. 그러려니 하다 눈으로 보며 실감했다. 나는 떡붕어빵크림, 모양이며 포장이며 그 맛에 푹 빠져 있는 판인데, 아이들은 스푼으로 떠먹는 두세 계단 위의 것을 선호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렇게 더운 날 골목을 돌며 팔던 아이스께끼를 팔던 아이를 봤다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주문하면 즉시 나오는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 같은 패스트푸드가 아이들의 식생활을 지배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음식문화의 차이가 신구 세대의 의식구조까지 갈라놓지 않을까. 혼자의 우려가 아닐 것이다.

참 호사해졌다. 예전 식 아이스께끼를 만들어 출시하자 보름 만에 200만 개가 팔렸다잖은가. 옛날 그것을 재해석한 것. 이를테면 사과, 레몬, 딸기의 맛과 향을 가미한 것으로, 복고풍을 즐기는 소비성향인 뉴트로 콘셉트다. 뜻밖에 추억의 아이스께끼가 재탄생한 것이다.

한증막 같은 더위다. 제주는 오랜 가뭄에 폭염으로 힘든 여름을 나고 있다. 바람이 없으니 하늘거리던 나뭇잎들이 미동도 않는다. 더울 수밖에. 이렇게 푹푹 찌는 여름날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으니 그나마 좋지 않은가. 이런 좋은 세상의 하늘을 함께 이고 있는 우리는 너나없이 복 받은 사람들이다.

회상에 깊이 잠겼었나 보다. 떡붕어빵아이스크림에서 우유가 손가락 새로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잖은가. 옛날, 길 건너 소년이 외치던 그 소리가 아파트 울타리를 넘어 들려오는 것 같다. “아이스 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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