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수리하는 제비 부부
둥지를 수리하는 제비 부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아침 5시, 현관에 나가 「제주일보」를 들고 와 펼치다 놀랐다. 1면 위로 눈이 가는 순간, 제비의 큰 날갯짓에 신문이 펄럭이는 것 같다. 졸음기가 가시고 눈을 번쩍 떠 다시 보았다. 제비가 날개를 좍 펴 파닥이고 있다. 그림이 드러나면서 제비인 걸 알게 됐고, 두 마리가 눈에 익숙한 둥지 언저리를 날며 바지런 떨고 있지 않은가.

사진을 찍은 고봉수 기자가 설명을 올렸다. “14일 제비 부부가 번식을 위해 제주시 이도 2동의 한 건물 주차장 묵은 둥지를 보수하며 바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사진은 제주시 한 민가 주차장 벽에 연전 지어진 묵은 둥지를 넘나들며 수리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담고 있었다. 사진이란 장르는 그림같이 추상적 기법이 덜해 사실적 표현에 우월하다. 흙을 물어다 쌓다가 흘린 자국이 언저리에 널려있어 작업에 골몰하고 있음을 알겠다. 해묵은 벽은 검고 새로 붙여놓은 것은 누레 그것까지 대비되고 있다. 과연 사진이다. 장면을 쫓아다니느라고 기자가 애썼겠다.

새의 둥지는 갖가지다. 짚을 물어다 나뭇가지 사이에 조그만 바구니처럼 두르는가 하면, 짚을 겹겹이 덧대 원통 모양으로 뉘어 놓은 것. 딱따구리같이 나무줄기를 파 배짱 좋게 들앉는 것, 심지어 뻐꾸기처럼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아 탁란(托卵)으로 부화하는 비겁한 녀석도 있다. 둥지를 청소하고 흠집은 바로 고친다고 한다.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이라지만 여간 꼼꼼하지 않다.

둥지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까치집이다. 오래전 서울에서 대전까지 44km를 아들 차로 내려오며 까치집을 집중해 관찰한 적이 있다. 수를 세다 하도 많아 포기하고 특성을 살폈더니 흥미로웠다. 상당수가 상수리나무나 자작나무 같은 낙엽수를 택해 시원히 시야를 확보한다는 것, 우듬지 조금 아래 자리 잡는다는 것, 나뭇가지 셋에 걸쳐 집의 기반을 정립(鼎立)한다는 것, 건축자재가 대부분 나뭇가지인데 그것들을 난잡하게 얽어 놓아 그 어우러짐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지탱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자연을 이용하면서 그 이치를 따르고 있어,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르러 감탄했다. 태풍에 무너진 까치집을 본 적이 없다. 바람이 지나간 뒤, 맨 처음 고개를 내미는 게 까치들 아닌가.

신문에 오른 제비 부부 사진을 보며 산문시를 한 편 썼다.

“「제주일보」 6월 15일 자에 고봉수 사진 기자의 ‘묵은 둥지 수리에 바쁜 제비 부부’란 제목의 사진이 실렸다. 편집자가 들머리에 클로즈업했다. 다시 알을 까 한 세계를 열어갈 건축이다. 제비는 흙에 짚을 섞어 흙질해 촘촘히 얹으며 벽을 쌓는다. 한 마리는 주둥이로 젖은 흙을 다지는 모습이고, 한 마리는 옆에서 날개를 좍 펴 팔락인다. 부부의 역동적 협동이다. 제비는 타고난 흙질의 귀재다. 어릴 적, 동네 장정 여남은이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마당에 들어서서 흙질을 했다. 짚이 섞여 으깬 흙을 올리고 그 위에 돌을 놓아 벽을 쌓았다. 흙·짚·돌은 이상적인 조합이다. 그 건축의 묘리를 제비가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흙질로 지은 초가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삼대째다. 제비 부부는 번식을 위해 내년에도 다시 올 것이다”―<둥지를 수리하는 제비 부부> 전문)

제비는 성실하다, 영특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