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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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얇은 나무나 널빤지를 둥글게 휘어 만든 테, 쳇바퀴. 이 테에 쳇불을 메워 체를 만든다. 쳇바퀴는 우둘투둘하지 않아 매끄럽고 밋밋하다. 단단히 부착한 거라, 길이가 달라지거나 모양이 변하지도 않고 늘 그 모습 그대로다.

별안간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란 말을 떠올린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는 그 말. 어쩌다 불러들였을까.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내일이 그만그만한 삶, 요즘 내 생활이 그런 건 아닐까. 어슷비슷한 하루하루가 판박이로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이 아닌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은 이치를 꿰뚫은 사실적 직유다. 먹고 자고 그러고 또 그렇게 이어지는 단조한 삶 같다는 의미다. 변화가 없으니 진절머리 날 게 아닌가. 나아감도 변화도 감흥도 없다, 자연히 신명 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삶 속에 무슨 진보고 향상인가.

쉼과 멈춤은 다르다. 쉼은 잠깐 정지, 멈춤은 오랜 정체다. 나아가다 심신을 점시 다독거리자는 쉼이 정지인데, 그냥 멈춰 버린 것은 정체다. 정체는 기운을 회복하려는 밝은 희망과 능동의 언어가 아니라, 과거에 머문 채 오늘로 흐르지 않는 퇴행과 방관의 언어다.

나는 지금 쇠해 가는 노년의 시간 속이다. 이즈음 가장 당혹스러운 게 전 같지 않은 것, 몸에서 팔딱거리던 혈기가 사그라드는 무력감이다. 은연중, 하루를 어찌어찌 살아내고 있는 거라는 퇴행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생각은 두세 걸음 앞서는데 행동이 어깃장을 놓아 영 따라주질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삐거덕거리는 206개의 뼈대가 나를 두 팔 벌려가며 막아 나서지 않는가. 잘못해 쓰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끝장이라며 아우성이다. 안에 틀어 앉은 이 몸과 마음의 괴리….

이게 빌미인가. 나아감이 없는 정체의 늪에 매몰돼 가는 것 같다. 어제 하던 일을 복사하는 오늘, 또 이 일이 내일로 재탕되는 무미건조한 삶.

오래전 일에서 떠나오자 갑자기 들이닥친 ‘다람쥐 쳇바퀴’에 허탈했다. 몫을 다했노라고 손 털고 나온 난데, 어느 자리에 설 것인가. 아무리 뒤적여도 마뜩한 공간이 없다. 조직에서 떨어지면서 이미 나는 존재를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요 근간 두어 해는 코로나19 시국이라 그게 은둔하는 명분이 됐다. 먹고 자고 또 그렇게, 그 일상적 순환 구조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편승한 것이라 무엇이 담 넘어가듯 어찌어찌 됐다. 글이나 몇 줄 쓰며 무탈하게 넘어가자 했다. 그게 생산적인지 하는 건 나중 문제이고, 내가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자신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이건 코로나19 시절의 생활백서다.

바이러스 감소세가 가시화됐다. 기다렸듯 세상이 에너지로 넘쳐난다. 의당 내 생활도 생기를 되찾아야 마땅하다. 다람쥐에게 만날 도는 그 쳇바퀴 그만 돌라 해야 할 때다. 한데 다람쥐에게 할 말이 아니라, 내 생활이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할 것인데 안되니 문제다. 먹고 자고가 몸에 밴 ‘삼식이’에게 무에 달라짐이 있을까. 어느새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심함에 걸음 내딛는 것조차 겁난다.

건강이 좋지 않으니, 아파트 둘레를 거닐고 글 몇 줄 쓰다가 이따금 길 건너 소공원으로 나가 바람이라도 쐴 작정이다. 간결하고 단조롭지만 내 생의 한 페이지에 무늬 한둘 올려야 한다. 먼저, 쳇바퀴 돌 듯해 온 이 고질을 말끔히 씻어 낸 뒤의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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