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
슬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옥한

미스트롯에 참가한 출연자들이 흘러간 옛 노래를 구성지게 부른다. 젊은 나이에 다들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절절함을 토해내는 감성에 원곡가수도 눈물을 훔친다. 고음으로 이어지는 슬러 단락에선 마치 드론이 계곡을 비행하듯 아슬아슬하다. 구수하면서 타고난 꺾기창법엔 애간장까지 다 녹는다. 두 아이 엄마인 제주 댁은 애절하면서 감성적인 목소리로 아가씨들을 제치고 영광의 왕관을 썼다.

슬러는 음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표에 긋는 선으로 음과 음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부호이다. 이음줄이나 연결선이라 할 수 있다. 가수에 따라 물 흐르듯 잔잔하고 감미롭게 부르기도 하고, 바이브레이션과 꺾기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마치 어름사니가 외줄 위에서 공중으로 확 솟구치다가 떨어질듯 하면서 줄 위에 사뿐히 내려앉듯이.

근래 들어 트롯열풍이 불고 있다. 뽕짝이라고 수준 낮게 취급되면서 젊은이나 지식인들의 외면을 받다가 갑자기 복고풍으로 유행하고 있다. 사랑, 이별, 아픔의 감정이 그동안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우리의 정서를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늦은 시각까지 그 대열에 끼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트롯은 1910년 무렵 미국에서 초기 재즈리듬의 사교댄스 ‘폭스트롯’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일본노래의 영향을 받다가 격동의 시기를 거쳐 70년대 들어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트롯의 창법은 성악과는 달리 가수의 잔 기교, 바이브레이션, 꺾기, 음색 등이 노래의 맛을 더한다. 그런 특징들이 독특한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엄마는 평소 노래를 좋아했고 하모니카도 잘 불었다. 유행하는 노래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봄날은 간다’, ‘초가삼간’ ‘타향살이’를 즐겨 불렀다. 우리 형제들은 당신이 애창하던 트롯은 물론, 일본노래 몇 곡씩도 부를 줄 안다.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평소 엄마 혼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저절로 익힌 것이다.

엄마처럼 노래를 잘못해서 그런지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쉽게 포기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결혼 초, 아이 둘 기르는 것이 힘에 겨워 딸애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주말에 만났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린 것을 기어이 떨쳐버리고 돌아설 땐 나도 눈물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홉 자식 건사하며 농사일, 집안 대소사를 가뿐하게 해낸 엄마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연 막바지에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시청하던 나도 어느새 그들과 하나 되어 산을 오르고, 시냇물을 건너며 굽이굽이 이어진 인생을 되돌아본다. 저마다 가슴에 아픈 사연 한 자락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각기 다른 음색과 독특한 창법으로 슬러를 표현하는 매력에 밤잠을 설친다. 살아온 과정은 서로 다르지만 그 시대의 멋과 맛,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노래가 시청자들을 하나로 묶어간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흔들 때 트롯열풍이 일어났다. 칠팔십 년대 유행했던 곡조들이 현재로 소환되면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혹은 따라 부르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는 한편,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것인지도 알게 해주었다. 음과 음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슬러처럼 사람들은 삶의 고비를 잘 넘기길 염원하며 오늘도 TV 앞으로 모여 앉는다.

엄마의 애창곡이 흘러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나도 가만히 따라 흥얼거려본다. ‘봄날은 간다’는 시인들이 좋아하는 부동의 애창곡 1위라고 한다. 꽃잎이 휘날리는 언덕 위에서 쓸쓸하게 임을 기다리는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구성진 마디마다 이어지는 슬러의 꺾임 위로 나의 봄날도 흘러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