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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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숲은 천연덕스럽게 계절을 갈아입는다. 겨우내 발가벗거나 남루로 허름한 입성이다가 이내 검소하게 새 단장이다. 얄브스름한 연둣빛 윗옷에 통 깊은 앞섶이 눈을 끈다. 고름 풀어 좋을 봄바람에 실려 내려앉는 실비단 햇살이 다사로와 볕 바른 곳에 앉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오월 하오, 아파트 숲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정문과 후문 사이로 난 연둣빛 오솔길이 눈앞이다. 연동에 이 아파트가 들어선 지 스무 해가 지났다 한다. 그때라 가능했을까. 아파트에 오솔길을 냈으니, 쉽지 않은 기획이다. 동과 동 사이에 두 줄 주차면을 내고도 남아 숲을 만들어 놓았으니 놀랍다. 아파트에 자리 잡은 작은 숲은 인공에 자연을 불러들인 소중한 가치다. 숲 자체로 이 아파트의 존재감이라 하겠으나, 나는 주민의 정서 고양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말하고 싶다.

겨우내 빈 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로 혹한을 견뎌내더니, 봄을 맞아 빠르게 변하는 숲. 크고 작은 나무들 물오르는 소리에 따스한 햇볕과 훈풍이 맞장을 치는지 연둣빛이 날로 짙어 간다. 파랗게 천지를 뒤덮는 저 퍼포먼스. 눈에 안 보이는 어떤 거대한 손이 붓질로 숲에다 푸른 물감을 마구 올렸나. 그게 아니면 어떻게 저런 조화가 가능할까. 자연은 신의 섭리다. 인간이 저 변화를 이적(異蹟)으로 바라보는 연유를 아슴푸레 알겠다.

평소 자주 거닐다 보니, 눈 감아도 발을 놓게 익숙하다. 몇 걸음을 내디디면 자갈길인지, 몇 걸음 더 하면 쉼터인지, 거기서 몇 걸음이면 쉼팡돌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둑새벽보다 훤하다. 온몸을 싸고도는 숲의 향기에 코끝이 호강한다. 걸음걸음 숨을 들이쉬었다 뱉는다. 허파꽈리 끝까지 들어간 신선한 공기가 묵은 것을 단박 밖으로 내친다. 폐 속으로 부사리같이 덤벼든 새 공기가 처져 있는 신체에 정한 기운을 쏟아붓는 순간, 나는 온전히 깨어난다. 들고나는 숨에 감사하는 순간, 눈으로 한 가닥 빛이 드는 걸 반들거리는 나뭇잎들에서 느낀다.

숲이 깊어간다 했더니 오월 들어 제법 싱그럽다. 내 오관만으로도 깊은 산속을 느끼고 남겠다. 이럴 때 구름 타고 흐르면 먼 곳의 천년 숲에도 닿을 수 있으려니. 상상에 날개를 달면 사유는 초월의 세계로 날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산과 바다를 넘어 끝없이 확산한다. 그렇게 원하던 동경과 낭만이 거기 있다. 이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이뤄 놓을 수 있는 자신의 질서다.

숲에 새가 귀하다. 꽃 필 무렵 늙은 왕벚나무에 동박새가 며칠 떼지어 나고 들더니, 꽃이 지고 나자 내왕이 없다. 읍내에선 고작 한 쌍이 동창 백매화 가지 새로 들락거리던 것들인데, 녀석들을 도심에서 조우하다니, 지금도 그 감흥 속이다. 요즘엔 직박구리가 이따금 짝지어 온다. 울음이 거칠긴 하나 떼려야 뗄 수 없게 친근해 언제 봐도 싫지 않다. 참새가 오지 않는다. 겨울에 방앗간을 기웃거리는 녀석들, 도시 바닥에서 무슨 곡식 낱알을 구할까. 여긴 올 곳이 아니다. 참새가 그립다.

아, 어느덧 오월 하순, 아파트의 숲은 이미 봄이 아니다. 숲이 짙어 깊더니 연둣빛에 진록을 두껍게 씌웠다. 나무들이 솟고 퍼지며 든든해 보인다. 숲이 볼륨을 키워 계절의 추이를 따라 흐르는 게 신비롭다.

한여름으로 가는 숲이다. 이제 막 계절의 경계를 한고비 넘어선다. 틈만 나면 이 숲속을 거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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