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증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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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이른바 ‘검수완박’이란 생소한 말이 귀에 진이 박이더니 얼마 전 일단락됐다. 합의다, 번복이다, 토론이다 여야가 당기고 밀리고 힘을 겨루다 일단 다수당의 뜻대로 간 것이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한다.’는 표방부터 너무 공격적·호전적이더니,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라 안팎의 이목이 쏠려 빈축을 샀을 법하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인데, 정치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하니 안타깝고 한편 민망하다.

나는 법을 모른다. 또 법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 다만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는 기본적 장치와 제도를 규제하는 근본이므로 그게 잘 만들어지고 좋지 않은 곳은 잘 고치고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데는 크게 공감한다.

사실, 검수완박만 해도 무엇을 어떻게 고치고 바로 잡자는 것인지 법리 자체에 충분한 지식이 없다. 수사와 기소의 경계를 명확히 짓자는 게 핵심인 것 같은데, 검·경 두 기관 사이에 이해 충돌하는 대목에 이르러 분위기가 만만찮으니 저렇게 팽팽히 대치하는구나 했다. 그게 정당 쪽에 무슨 실리가 있어 저러는 것인가 하는 수준을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이 점을 실토하면서, 내가 이 법안이 진행되는 한 과정에 나타난 국회의원의 언어 사용에 대해 아쉬웠던 심경을 털어놓자는 것이다.

지난 4월 3일 국회 본회의장. 검수완박의 일환인 검찰청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배현진 의원이 “당신의 그 앙증맞은 몸으로 국민의힘 의원들 위를 밟고 지나가기 위해 구둣발로 저희를 걷어차며 의장석으로 올라왔다.”라 말한 바 있다. 실시간 나라 안에 생생하게 중계된 장면이다.

경악했다. 의장실에 들어가려다 막는 바람에 문밖 바닥에 앉아 농성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려는 의장과 국회 직원들 간에 한바탕 낯 뜨거운 소동이 벌어진 것, 의장이 의장석에 앉자 배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하는 순간, 눈을 감아 버렸다. 차마 눈을 뜨고 들을 수가 없었다.

‘아, 저건 아니야. ‘앙증맞은’을 저렇게 쓸 수는 없어. 저렇게 사용돼선 절대로 안되는 말이야. 저렇게 되면 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폭언이야. 악담, 험담이 되는 거야. 생각 없이 마구 내뱉는 개소리….’

때로는 침묵하거나 우회적 화법이 되레 나을 것 아닌가. 속 끓이면서도 겉으로는 적절히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반어법은 언외의 힘을 갖는다. 따발총처럼 얼굴에 들이대 직설적으로 저렇게 쏟아부어야만 하나.

‘앙증맞은’은 사용자가 잘못 꺼낸 말이다. 아이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 작고 귀여워 앙증맞다고 한다. 그런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의 고사리손이 앙증맞다 하고, 그 아이를 앙증맞다 한다. 가령 찬사일지라도 칠순 노인에게 갖다 붙일 수는 없다. 아무리 신분이 국회의원일지언정, 아직 40이 안된 사람이 아버지뻘인 분에게 할 말이 따로 있다. 하물며 앙증맞다에는 ‘격에 어울리지 않게 작다’는 뜻도 있잖은가.

배 의원은 신분을 떠나 인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어야 했지 않을까. 이제 유교가 퇴색한 사회가 되고 있지만 어른의 경륜까지 무시해선 안된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은 진즉 삼가 좋다. 나쁜 말은 말할 게 없고, 좋은 말도 적게 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다. 더욱이, 경우에 어긋난 말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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