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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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어린이’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첫 아동문학잡지(1920) 《어린이》에서 맨 처음 사용해 정착시킨 말이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 운을 뗀 그 말이 오늘 큰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형용사 ‘어린’과 명사 ‘이’의 복합어 ‘어린이’. 어린이란 말에는 방정환 선생의 소망이 담겨 있다. 늙은이, 젊은이는 있어도 ‘어린이’란 단어는 국어에 없었다. 애기, 애새끼, 어린 것, 애, 애들, 계집애라는 말이 쓰였을 뿐이다. 그 당시 ‘어린이’란 말이 새롭게 나온 것은 국어 속의 ‘탄생 신화’가 됐다.

‘어린이’는 발달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한 시기를 뜻하지 않는다.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 자라고 있는 사람, 어른으로 커 가는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다. 어려도 한 인간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소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라고 소리 내 불러보면 그 감흥이 올 것이다. 그 조어 체계의 구성적 의미가 어감에 바로 묻어 나온다. 그렇잖은가. 그들을 함부로 해선 안된다는, 도무지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정중함이 말속에 녹아 있다는 얘기다.

의무교육이 시행되지 않은데다 다른 교육 혜택을 받는 아이도 많지 않던 시절, 시골에선 농사일 도시에선 공장일에 내몰려 내일을 꿈꾸기는커녕 마음껏 뛰놀 수조차 없었다. 방정환 선생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어린이, 미래를 향해 꿈꾸며 걱정 없이 자라는 그 모습이었다.

1923년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색동회가 발족되면서 어린이날을 공포했고, 마침내 천도교당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크게 열렸다. 101년 전, 그때의 표어가 오늘에 감동으로 온다. “희망을 살리자, 내일을 살리자”, “잘 살려면 어린이를 위하라”. 어린이가 우리의 희망이니 어린이를 위하는 게 곧 우리가 잘사는 길이라는 것. 얼마나 절실하고 목말랐었을까.

기념식 후, 200명의 어린이가 ‘어린이날의 약속’을 쓴 전단 12만 장을 배포했다 한다.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구호를 외치며. 그때 배포했다는 아이들이 가장 간절한 희망 사항 10가지를 담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선전문>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면서, 실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이발이나 목욕을 때 맞춰 해주세요.”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해주세요.” “산보와 소풍을 가끔 시켜 주세요.”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아끼고 존중하며, 어린이들이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저들의 날에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가 있다. <어린이날 노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기찻길 옆 오막살이’ 하면 떠오르는 동요 작가 윤석중이 작사하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 하면 바로 아잇적 추억으로 돌아가게 하는 <반달>과 <고드름> <따오기>를 작곡한 윤극영이 곡을 붙인 노래다.

오늘의 우리 어린이들, 훠얼훠얼 에메랄드빛 오월의 창공으로 날갯짓한다. 초록으로 물들어 싱그러운 벌판을 재잘재잘 냇물로 흐른다.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이며 영화관 등 위락시설은 말 그대로 헬게이트가 된다. 우리 어린이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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