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 마이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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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원자폭탄 하면 아인슈타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 분야의 핵심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것이 분명하다. 독일보다 미국이 앞서야 한다는 학자들의 입장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가 서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그는 연구 현장에 있지 않았다.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그의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지 연구 능력 때문에 그를 앞세운 것은 아니었다.

그 편지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가 원자폭탄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리고 히로시마에 투하되면서 상상을 초월한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많은 과학자들이 우울한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도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기자회견장에 나서야만 했다. 그 놀라운 사태와 관련해서 과학자들을 대표하여 대답을 해야만 했다.

히로시마와 아인슈타인을 연결시키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아인슈타인은 우선 이런 대답을 했다. “독일이 원자폭탄 제작에 실패한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일이 앞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편지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은 리제 마이트너라는 이름을 거론하게 된다.

원자폭탄을 위한 핵심 이론에서 중요한 두 사람을 말하라면 아인슈타인과 리제 마이트너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아인슈타인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고, 리제 마이트너는 독일에서 정교수직에 오른 최초의 여성 물리학자이면서 유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이나 리제 마이트너나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으며 중요한 학술경력을 베를린에서 쌓은 유대인들이었다. 나이는 비슷했지만 아인슈타인이 일찍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1921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1944년에는 리제 마이트너가 노벨상을 받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스웨덴의 노벨상 위원회는 두고두고 비난을 받아왔다.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자리잡게 되고, 리제 마이트너는 뒤늦게 뉘른베르크법에 쫓기면서 독일을 탈출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이나 리제 마이트너나 그들의 연구 결과가 무서운 폭탄으로 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아인슈타인은 히틀러의 독일을 염려하여 편지에 사인을 한 것인데, 리제 마이트너는 마지막까지 맨해튼 프로젝트에의 참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 기자회견장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런 사실을 밝혔다.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녀가 독일을 탈출할 때 가지고 온 그 가방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히틀러의 독일은 그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했던 것을 그들 스스로 독일 밖으로 쫓아냈던 셈이다. 그렇게 쫓겨난 여성 물리학자의 피난 보따리 안에 온세상을 뒤바꾸어놓을 만한 것들이 들어 있었던 셈이다. “세계사의 위기에서 정처없이 쫓겨가던 그 보따리 안에 장차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어려운 시대에 쫓겨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 비숫한 기대감을 품고서 다가오는 성탄절을 바라보았으면 해서 리제 마이트너를 소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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