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책읽기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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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밤이 깊도록 책을 읽는 일이 많아진 것은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였다 책이 흔치 않았던 시골 마을에서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면 시간을 아껴야 헀다. 책을 읽으려고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많은 책을 읽었다. 당시로서는 나의 독서가 수준이나 과정에 맞는지를 따질 능력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오직 책이 있으면 읽을 뿐이었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거기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지금으로서는 아득할 뿐이다. 전기가 들어오지않는 시골 집에서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읽던 기억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따금씩 촛불을 켜고 책을 보는 버릇이 남은 것은 아마도 그 당시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밤이 깊고 캄캄할수록 호롱불의 안온함은 그 깊이를 더한다. 무언가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이 드는 불빛 때문에 당시 읽던 책이나 독서 경험에 대한 기억 역시 대체로 행복감이 넘치는 듯한 생각이 든다.

눈이 내리는 밤이면 그 행복감은 훨씬 더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행복감은 아마도 삶의 근원적 기쁨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있는 기쁨을 느꼈다면, 그것은 분명 삶에 어떤 경지를 엿본 탓이라고 생각된다. 일찌감치 굴묵(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방을 뜨근뜨근하게 달구어 놓은 뒤에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는 밤, 눈까지 내린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다. 책 속에 깊이 빠져 있다가 문을 열고 나갔는데, 언제 내렸는지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다면 그 순간의 놀람과 신비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내게 있었서 눈이 차가운 이미지보다는 따스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 역시 이 시절의 경험 탓일 것이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고향 집은 대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밤이 깊도록 어머니는 호롱불에 의지해서 바느질을 하고 계셨고, 나는 그저 책을 읽을 뿐이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서 제법 쌓이면 대숲에서 이따금씩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너무도 고적하고 쓸쓸해서, 어린 마음에도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추고 그 소리를 기다리고 했다. 대나무는 워낙 낭창낭창해서 웬만한 바람에도 부러지는 일이 없다. 하지만 폭설이 내리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다 못해 부러지는 일이 더러 있다. ‘하고 길게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눈이 대숲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잠결에도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에 잠자리가 어수선할 지경이었다.

현실은 청소년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감이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 및 외출을 삼가는 집콕생할에 동안 인내하면서 독서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책읽기를 통해 체계적이며 실제 경험에 근접한 세계를 접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며, 그 생각의 깊이와 넓이에 비례해 내재적 가치의 용량도 커진다는 것이다. 4차 산업시대가 원하는 인간은 인문학적 감성으로 생각하고 창조하는 인간이다. 창조는 사색으로부터 나오고 사색은 책읽기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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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옥 2021-11-29 11:58:22
까맣게 잊고 있던,
따스했던 시절로
순간이동을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