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공동 참여하는 식물도감 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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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 식물교육과 멸종위기종 보호 앞장
대학 교수 아닌 연구기관 출신 중 처음으로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으로 선출
북한에서 북방계식물 연구와 한라산 자생식물 체계적인 분류는 '버킷 리스트'
현진오 소장이 북방계 식물의 기원을 조사하기 위해 부탄에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답사한 모습.
현진오 소장이 북방계 식물의 기원을 조사하기 위해 부탄에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답사한 모습.

“꽃구경 갑시다. 살고 있는 동안 꼭 봐야할 우리 꽃을 알려드릴께요.”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58)이 1996년부터 진행한 ‘꽃산행’은 식물 교육과 멸종위기종 보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30여 년간 국내·외의 식물 자생지를 탐방하며 식물 연구에 앞장서 온 그는 지난 2월 열린 한국식물분류학회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식물분류학회는 1968년 창립, 53년의 역사를 지닌 전문 연구단체로 회원은 600명이 넘는다. 대학 교수가 아닌 민간 연구기관 출신 식물 분류학자가 회장에 오른 것은 현 소장이 처음이다.

현 소장이 시민들을 상대로 식물교육을 하는 모습.
현 소장이 시민들을 상대로 식물교육을 하는 모습.

▲한반도 보호식물 연구 학계가 주목

현 소장은 1963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3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산과 들을 누볐던 그는 지천에 핀 꽃과 식물을 보면 특징과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척척 구별해냈다.

조천초·조천중·오현고를 우수한 성적에 졸업한 그는 1982년 경찰대(2기)에 지원했다.

시험과 체력검사를 통과했지만 신원 조회에서 연좌제로 낙방했다. 가까운 친인척이 제주4·3사건 당시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고3담임은 그에게 서울대학교 진학을 추천했다. 식물생태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대에 입학, 생물학 전공을 선택했다.

1980년대 초반 대학과 기업에서는 유전공학 붐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유전공학 대신 식물생태학 전공을 선택했다. 1986년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 이 대학에서 석사에 이어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시시 건건 간섭하는 젊은 지도교수와 한바탕 붙은 그는 대학원을 박차고 나왔다. 안정적인 삶과 출세가 보장된 서울대 박사 과정을 포기해 버렸다.

그는 1992년 등산전문지 월간 ‘사람과 산’에 입사, 기자 생활을 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편집부장에 올랐다. ‘사람과 산’에 연재한 ‘꽃산행’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산을 무작정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태 전문가가 동행해 현장교육을 하면 식물과 더욱 친숙해지고 전문적인 지식도 배울 수 있어서 사람들은 절로 ‘꽃산행’에 나섰다.

그런데 한 선배가 식물 현장교육도 좋은데 그의 ‘무면허’(박사 학위 미취득)를 안타까워했다.

현 소장은 1998년 순천향대 대학원에 입학, 2년 만에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한반도 보호식물의 선정과 사례연구’였다.

그가 멸종위기 식물 종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한 논문을 내자,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해외는 물론 전국 곳곳을 답사하며 멸종위기 종을 연구한 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2002년 식물연구 웹진과 전문 잡지를 발간했던 친구와 동북아식물연구소(현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를 창립했다.

여수에 있는 무인도인 대삼부도에서 연구를 하는 장면.
여수에 있는 무인도인 대삼부도에서 연구를 하는 장면.

▲발품을 팔며 식물 신종을 발견하다

‘백양더부살이’는 엽록소가 없어서 광합성을 못한다. 쑥 뿌리에 자신의 뿌리를 박고 물과 양분을 얻어먹고 산다. 기생식물이지만 봄마다 어김없이 새싹을 틔우고, 5월이면 꽃을 피운다.

1928년 일본인 식물학자로 한반도를 누볐던 다케노신 나카이는 전남 장선군 백양사 사찰 부근에서 채집한 식물을 도쿄대 식물표본관에 보관했다. 하지만 그 식물의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나카이 박사는 라틴어로 이 식물에 대해 ‘양치식물(고사리)에 더부살이를 하는 기생식물’이라고만 표현하고 학계에 보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사실과 달랐다. 백양더부살이는 고사리가 아닌 쑥 뿌리에 붙어사는 식물이었다.

현 소장은 2003년 이 식물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신종(新種)임을 확인한 후 미국 학계에 보고했다. 현 소장 발견한 ‘백양더부살이’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이름을 올렸다.

섬쑥부쟁이는 울릉도에서 ‘부지깽이나물’로 불렸는데 과거 울릉도 개척민들의 춘궁기를 버티게 해준 귀한 식재료였다.

‘추산쑥부쟁이’는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왕해국(王海菊)과 섬쑥부쟁이가 자연상태에서 교잡해 생긴 식물로 현 소장이 처음 발견했다.

그는 1999년 울릉도에서 120일을 살면서 자생식물을 연구하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중 ‘추산쑥부쟁이’의 실체를 확인했다.

울릉도 추산지역의 지명을 따서 이 같은 이름이 붙였다. 여느 쑥부쟁이처럼 국화과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이자 보호식물이 됐다.

식물 연구를 위해 일본 대마도를 방문한 모습.
식물 연구를 위해 일본 대마도를 방문한 모습.

▲한라산 멸종위기 식물 연구 필요

‘암매’라고도 불리는 돌매화나무는 높이가 10㎝로 풀처럼 작은 나무다.

북극에 가까운 지역에서 땅에 납작 엎드려 사는 극지식물로 높은 산 위 추운 곳에서 적응했지만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다.

현 소장은 북방계 식물인 돌매화나무가 한라산 백록담 일대에만 자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북쪽이 고향인 북방계 식물 조사를 위해 히말라야와 극동러시아, 중국, 일본을 현장 답사했다.

그는 북한을 방문, 북방계 식물의 원류를 찾고자 했다. 국가 프로젝트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식물도감 편찬은 현 소장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현 소장은 “2000년대 초반 금강산 관광 개방으로 북한을 방문, 북방계 식물을 연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후 남북 경색과 유엔의 대북 제재로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그의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 식물의 원류는 물론 중간단계에서 진화 된 과정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는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한라산에서 특화된 식물 연구와 멸종위기종 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물의 분류 연구는 그 식물의 기원과 분화·진화 단계는 물론 다양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다”며 “이런 연구와 기초자료가 있어야 식물을 식량작물로 재배하거나 의약품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소장은 “지구의 생물 180만 종(種) 가운데 단 1개의 종이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자연에서 공존하는 다양한 식물 종은 인간처럼 생존하며 번성해야 할 권리가 있다”며 “우리 세대와 후손들이 생태계를 보전하고 자연을 보호하려면 다양한 생물 종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필요하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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