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나와 창업 꿈 실현...IMF 부도 극복하며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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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문봉만 ㈜원우ENG 회장
1979년 현대중공업 입사 후 근면성과 실력 인정받아
자본금 500만원으로 세운 첫 회사 IMF ‘유탄’에 휘청
현대건설기계·전진중공업·日 IKNOW 등에 부품 공급
현대건설기계 양경신 구매전무(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지난 8월 ㈜원우ENG 공장을 둘러보고 문봉만 회장(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건설기계 양경신 구매전무(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지난 8월 ㈜원우ENG 공장을 둘러보고 문봉만 회장(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기업 입사 후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번듯한 공장을 갖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주시 이도1동 출신인 문봉만 ㈜원우ENG 회장은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에서 근무하다 1987년 1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1년간 현대유압에서 근무하다 1989년 4월 원우금속을 창립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친구와 함께 시작한 회사 이름은 으뜸 ‘원(元)’, 벗 ‘우(友)’에서 따왔다.

IMF외환위기 당시 회사가 부도를 맞았지만 다시 일어서며 지금은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에 중장비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건실한 회사로 키워냈다.

▲어린 시절

문 대표는 1954년 중등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4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광양초등학교와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인하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장교(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197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단둘이 모래찜질을 위해 삼양해수욕장을 자주 찾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장이 안좋았던 아버지가 여름만 되면 어린 문 대표를 데리고 모래찜질을 위해 삼양해수욕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창 시절 동네에서 5·16도로를 따라 산천단까지 걸어다니며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1973년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난 이후 직장생활에 이어 기업체를 일구며 울산에 정착했다.

문 대표는 어릴적부터 어머니로부터 “너는 쇠소리나는 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결국 모친의 말대로 대학에서 금속학을 전공, 중장비 부속품을 생산하는 기업체에 다니다 관련 업체를 세웠다.

▲창업의 길로…

문 대표는 1979년 현대중공업 입사 후 부지런히 일하면서 상사로부터 근면성과 실력을 인정을 받았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분야라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 꼭 담아뒀던 창업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 1987년 1월 과장으로 퇴사할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

당시 회사에서는 유능했던 직원을 붙잡기 위해 간부들을 동원해 설득에 나섰지만 그는 과감히 사표를 내던졌다.

후일 현대중공업 사장을 지낸 유관홍씨 등 많은 선배와 동료들의 ‘함께하자’는 말을 뒤로 하고 회사를 나와 ‘원우금속’을 설립했다.

▲IMF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다

문 회장도 IMF 이후 무수히 쓰러진 중소기업 사장들처럼 예상치 못한 사태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1997년 한 해 마지막 달인 12월 주요 납품처의 하나였던 한라중공업이 부도를 냈다.

원우금속도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결국 이듬해 4월 어음을 막지 못하는 ‘유탄’을 맞으며 결국 폐업의 수순을 밟았다.

문 회장은 위기 속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채권단을 찾아다니며 “반드시 회사를 살리겠다”며 설득에 나섰다.

문 회장은 다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지만 끝까지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남아있는 소수 직원들과 함께 자금을 조달하며 재기에 나섰다.

당시 교편을 잡던 부인도 힘을 보태겠다며 사표를 내고 회사에 합류했다.

직원과 가족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문 회장은 부도로 발생한 부채를 매달 1000만원 이상씩 갚아나갔고 1998년 다시 ㈜원우ENG를 창업했다.

IKNOW사 관계자들이 2019년 ㈜원우ENG를 방문해 문봉만 회장(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IKNOW사 관계자들이 2019년 ㈜원우ENG를 방문해 문봉만 회장(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직원과 가족이 큰 힘

문 회장은 “자신을 믿고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일해주는 직원들, 어려운 가운데서도 용기를 북돋워준 가족들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회사 부도 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친구 집에서 더부살이하며 학교를 다니며 1998년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울산지역 1등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자 밤새도록 울었다.

문 회장은 서울공대 졸업후 미국 카네기맬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아들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문일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그의 아들이다.

남편을 돕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던 교사 생활을 접고 회사에 합류해 20년 넘게 밤낮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일하는 아내에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문 회장은 “최근 무릎 관절이 안좋아 병원을 오가는 아내를 볼 때마다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부분 기업들이 힘든 시련을 겪고 있지만 회사 여건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건설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경기 불황과 과다한 투자에 의한 어려움이 많았지만 원우ENG는 로봇 등 첨단 장비 도입을 통한 인건비 절감으로 극복하며 사세를 확장, 2004년 자동절단 기기, 도장 제품을 생산하는 ㈜모던파이어니어를 세웠고, 2008년에는 콘크리트 펌프카, 지게차 부품과 우드 칩 그라플을 생산하는 ㈜모던파이어니어를 세웠다.

현대건설기계, 전진 중공업을 비롯해 일본의 조선소에 들어가는 크레인 등 기자재를 공급하는 대표 업체인 IKNOW사가 주요 거래처다.

▲사회공헌 활동

문 회장은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나눔의 삶도 실천해 왔다.

현대건설기계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현대건설과 협력사 간 상생 사업을 적극 펼쳤고 외국인 근로자 복지 향상 및 범죄 예방을 위해 경주 외동읍 외국인 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울산제주도민회장, 재외제주경제인총연합회 부회장을 맡아 고향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경주시민상, 경주시장 표창, 제주도지사 표창, 제26회 제주상공대상 특별대상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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