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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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조시인

제주에서는 음력 8월 초하룻날 조상의 묘에 소분(掃墳·벌초)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상을 숭배하는 미풍양속이라 하여 초··고 대부분의 학교가 벌초 방학을 했다. 그날 따라간 자식들은 풀베기가 서툴러서 주로 산담 위 풀을 제거하거나, 낫으로 벤 풀을 밖으로 치웠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벌초하는 일을 익혔다. 공무원이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차츰 일요일을 선택하여 벌초하게 되다 보니 방학도 없어졌다.

오래전부터 가족 공동묘지를 조성한 집안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집안도 많았다. 묘는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가 잘 갖춘 명당자릴 찾아서 쓰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오름 꼭대기 등 멀고 힘들게 찾아가야 하는 곳에 쓴 묘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종일 벌초하거나 2~3일 동안 하는 집안도 있었다. 자손이 많은 집안은 2~3명씩 짝지어 분산해 가기도 했다. 추석 전까지는 모든 벌초를 마쳐야 했다.

명당자리는 어딘가? 지금은 마이카시대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곳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좌국도 우지방도(左國道 右地方道)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근래 들어 가족공동묘지, 납골묘, 자연장 등 다양한 장례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방법이든 장단점은 있다. 21세기는 지구촌 시대요, 핵가족 시대다. 문중 벌초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 벌초에 대해 걱정하는 집안이 많아지고 있다. 벌초할 사람이 몇 안 되거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장례문화는 후손들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변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근래 들어 벌초를 대행해준다는 광고도 볼 수 있다. 꽤 반응이 좋다고 한다. 어쩌면 코로나19가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주인 없이 벌초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특히 문중 벌초 때는 불평의 소리도 들릴 때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왜 제주에 있는 사람들만 하느냐는 거다. 복 받는 일이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을 떠나 촌지를 보내거나 수고한다는 전화 한 통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날은 화합의 장이 아니라 갈등의 장이 되기도 한다.

예초기 엔진소리가 멈췄다. 자르지 못한 풀을 낫으로 잘라내며 깨끗이 정리 한다. 선대부터 상석 위에 과일과 술 한잔 올리고 큰절 올린다. 음복과 함께 땀과 괴로움도 날아간다. 조상의 음덕과 뿌리를 되새겨보는 흐뭇한 시간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런 문화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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