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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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올겨울은 폭설이 잦다. 많은 눈으로 농가의 피해가 따르고 일상생활이 불편하지만, 혹 내년 가뭄으로 고생할지도 모를 농사를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거리는 오가는 인적 드물고, 차들도 눈을 뒤집어쓴 채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다.

눈 내리는 날은 아이들의 축제 날이다. 왁자한 웃음소리로 떠들썩하던 언덕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공원 곁 나지막한 언덕은 썰매를 타느라 종일 시끄럽던 곳이다. 그 무대의 주인공들이 어울려 뒹굴고 놀던, 차도 옆길로 돌아가던 언덕이 적막하다. 놀이터엔 눈사람 하나 세울만도 한데, 고즈넉한 빈자리에 배고픈 참새 떼가 먹이를 찾다 떠나곤 한다.

눈이 오면 아이들과 어울려 놀던 개조차 얼씬 않는다. 이제는 개라고 불리기보다 반려견으로 신분 상승하더니, 형제자매들처럼 여러 마리를 집 안에 키우는 가정이 낯설지 않다. 반려동물과 한 공간에서 삶을 공유하며, 함께 공존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자식처럼 품고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 사람만이 누릴 수 있었던 경계를 이미 허물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도 없이 강아지를 키우며 희희낙락하는 걸 보면, 어린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주인의 손길에 따라 자라는 성정을 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크게 다를 것 없다. 액세서리에 옷이며 간식까지 아낌없이 정성을 쏟는다. 그 자리에 아이들이 있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무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만 그게 곧 삶의 원동력이다. 자식을 품에 안았을 때의 뿌듯하고 벅찬 감동은,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인간의 고귀한 본성이다. 놀이터를 환하게 밝히던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는 우리의 희망이었다. 좀체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주인을 잃은 빈 놀이터를 보면 가슴이 휑뎅그렁하다.

동남아 어느 오지 마을이 떠오른다. 맨발에 후줄근한 옷차림, 누런 코를 훌쩍이는 눈이 큰 아이들은 하나같이 구김 없이 밝고 맑았다. 앞으로 저 아이들이 나라의 꿈나무요, 미래의 일꾼이 아닌가.

과거 우리의 모습과 흡사 했다. 여러 형제 틈에서 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사회성을 키우며 자랐다. 먹고 사는 게 전부였던 시절에 비교해, 훨씬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살면서 오히려 부족해 원하는 게 많아졌다. 가정을 꾸리고도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을 미루거나 망설이는 부부가 적지 않다.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으로는 가임 부부들에게 실질적인 공감을 얻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서너 살쯤 되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가 놀이터로 들어선다. 펭귄처럼 뒤뚱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눈을 한 움큼 쥐어 풀풀 날리다, 하늘을 향해 손을 저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태어나 처음으로 보고 느끼는 새로운 세상일 거다. 아빠도 덩달아 아이가 됐다. 부자의 즐거워하는 몸짓으로 텅 빈 놀이터가 꽉 찬 느낌이다. 잠시 일손을 미루고 한 편의 동화를 엮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제주는 타 지역보다 젊은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덩달아 아이도 많이 태어나는 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철새처럼 왔다 떠나는 곳이 아닌,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어야 앞으로 제주가 젊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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