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빨간 우체통을 보면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나에게 손편지를 보내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체통을 보면 문득 많은 사연을 담은 편지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잠시 서성이곤 한다.


서로 연락할 수 있는 매체가 편지밖에 없었던 시절에 만년필로 꽃 편지지에 써서 보냈던 우정의 편지, 남자친구로부터 받았던 연애편지, 부모님께 드렸던 안부편지도 추억의 저편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젠 손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지만 나에게 오는 편지도 없어 쓸쓸해진다.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편리한 세상이 되어버렸으나 손편지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친다.


지난여름 문학기행을 다녀온 통영에는 청마 유치환이 연인이었던 정운 이영도에게 오천 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는 우체국 터가 남아 있었다. 유치환의 시 ‘행복’에서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우체국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던 그 우체국이다. 청마와 이십 년 간 주고받았던 펴지를 엮어서 ‘사랑했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는 책을 낸 정운이 부럽기도 했다.


인스턴트 사랑이 넘치는 이 시대에 플라토닉 사랑을 나눈 두 시인의 사랑은 널리 알려진 위대한 로맨스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기다림과 설렘을 담아 주고 받았던 연애편지, 시인 청마에게 정운을 향한 플라토닉 사랑은 시를 잉태하게 했고 그들의 사랑은 시가 되어 감동으로 이렇게 살아있다.


청마문학관에서 정운의 고운 모습이 담긴 사진과 청마의 시를 읽으면서 잠자던 내 마음에도 잔잔한 파문이 번져나가는 듯했다. 여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고 있으리라.


통영에서 청마와 정운이 주고받았다는 손편지. 그 사랑으로 행복한 삶을 살다 간 두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현실의 사랑은 꿈처럼 황홀하지도 않으며 낭만적이지도 않다. 엄연한 현실이기에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고 거센 폭풍우에 난파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상 속의 사랑은 무한한 우주로 날아가 무수한 꿈을 펼칠 수 있기에 무상의 행복을 안겨준다. 이런 사랑은 신이 내린 축복이었을까.


톨스토이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인간은 오직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한 구절에 수긍이 간다.

 

가까이에 계시는 부모님이나 친구를 보아도 삶의 원천은 사랑이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내 안에 있는 사랑의 힘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사랑을 ‘에로스, 루드스, 스토르게, 마니아, 프라그마, 플라토닉, 아가페’ 등으로 말하지만 그 근원은 뜨거운 가슴이 아닐까.

 

앞마당에 분꽃이 피었다가 진 자리에 새까만 꽃씨가 맺혀 있다. 여름에 피어나 운치를 살려주었던 봉숭아도 씨방이 부풀었다. 감나무와 석류도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탐스럽다. 사랑이 머물다간 자리에 피어난 꽃과 열매들, 존재한다는 것은 사랑을 꽃 피우기 위한 몸부림이리라.


홀연히 광풍이 일어 침울한 기운이 한바탕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저 삽상한 바람이며, 쾌적한 햇살, 수많은 꽃의 미소에 그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내 뜰에 피어난 꽃들에 눈 맞춤을 한다. 눈이 부시다. 어디선가 좋은 인연이 다가오는 것만 같아 마음의 빗장을 열어 놓는다.


아무리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우체국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우체통을 보면 문득 궁금증에 시달리곤 한다. 누군가의 애틋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 그 로맨스의 틈바구니에서 미혼남녀들이 감염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