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이전에 예술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행정 당국의 예술 단체에 대한 지원도 한라문화제 등 연례행사에 국한됐다. 모든 예술인들이 힘들었지만 특히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야 하는 연극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연습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조명, 음향 등 무대 시설을 갖춘 공연장도 몇 군데 없었다.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없어 낮에는 직장엘 다니고 저녁에 모여 연습을 해야 했으나 라면 한 끼 먹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서로들 주머니를 털고 지인들과 애호가들에게 손을 내밀어 연습비를 충당하면서 공연을 했다. 그래도 불모지와 다름없는 이 땅에 문화예술의 싹을 틔운다는 보람으로, 사명감으로 여기고 무대를 올렸다. 공연이 끝나면 출연료는커녕 적자를 메꾸기에 급급했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문화예술의 환경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화라는 범주가 사용하는 사람 입맛에 맞게 규정되는 것이어서 사회단체·체육단체에까지 확대되다 보니 예산 심의 과정에서 도의원들의 입김이 강해져서 정작 예술인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민간단체가 보조금을 횡령하거나 목적과 달리 부당하게 사용한 사례가 적발되었다. 문화 재정에서 차지하는 민간단체 보조금 규모가 3분의 1을 넘어 매년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조금 관리가 소홀하다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문체부는 2010년 ‘민간단체의 보조금 관리에 대한 규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는 90%를 넘지 않도록 하고 단체의 자생력을 위해 지자체별로 자체부담금을 설정하도록 했다. 그래서 많게는 50%까지 보조단체에 자부담을 지우게 했다. 이것이 예술 환경의 현실을 무시한 악법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100만원을 지원받기 위해 같은 액수를 부담해야 하는 법은 예술인들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만들 우려가 많았다.

이러한 비현실적 상황에 전국단위 예술단체의 시정요구가 봇물을 이루자 문체부는 2015년부터 훈령을 개정해 개인 예술가들은 자부담이 없어졌고 단체들도 10% 미만에서 부담하게 했다. 그 대신 전용 카드를 사용해야 하고 복잡한 절차를 이용해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는 등 매우 까다로워졌다.

필자는 이런 사태를 미리 예견했는데(2014년 6월 16일자 제주논단) 기어코 제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소극장 단체가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다.

소극장을 운영하려면 건물 임대료, 조명이나 음향기기 구입 수리비, 각종 공과금 등 많은 운영비가 소요된다. 거기다 단원들 대부분 투잡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저녁은 극장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연습비는 지원 항목에서 제외된다. 고스란히 자부담이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이 출연료를 받으면 일정 부분 회비를 내어 자부담금을 충당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돈을 주고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통장내역에 남게 되었고 불만을 품은 누군가 이를 고발했다. 이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져 검찰에 고발당할 위기에 이르렀다. 3년 치 1억이 넘는 배상금을 환원해야 할 처지이며, 그보다 가혹한 건 앞으로 3년간 이 단체가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예술단체를 운영하는 누구도 자부담금 정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법이 올가미를 만들고 순진한 예술인들을 옭아맨 꼴이다. 공금을 유용한 것은 잘못됐지만 그 단체는 자비를 털어 소극장을 개척하고 20여 년간 제주의 연극 무대를 지켜온 공로가 더 빛난다. 망연자실한 채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상처받은 예술혼에 선처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