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된 것이 개다.

서기전 1만년 전부터 사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간과 개의 교류가 오랜 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훌륭한 견공(犬公)들의 일화도 많다.

상당수 견공들은 불후의 공적을 쌓으면서 동상으로 만들어져 후대에도 길이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 속에서 주인을 구해낸 전북 임실의 ‘오수의 개’가 유명하다. 희생과 충성이 담긴 의견(義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오수의견공원’이 생기고 매년 4월 다채로운 의견 문화 행사가 열린다.

일본에서도 도쿄 시부야역에 있는 충견(忠犬) 하치의 동상이 유명하다. 죽은 주인을 10년간 역 앞에서 기다린 하치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하치의 사체는 우에노 구립과학관에 박제로 전시돼 있다.

벨기에의 앤트워프에는 아름다운 동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와 파트라슈의 동상이 있다.

요즘 대한민국이 개로 인해 시끄럽다. 충직한 개 이야기가 아니라 개가 사람을 물어 세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유명 아이돌 그룹의 가수이자 탤런트의 반려견이 유명 한식당 대표를 물어,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로 개 물림 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제주에서도 지난달 40대가 동네 개에 물리는가 하면 10대 여학생이 밤에 학원서 귀가하다가 진돗개에 물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개(반려견)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지나친 동물 애호 문화를 내심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당에 최근 개 물림 사고가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반려문화에 강한 불만을 쏟아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소득증가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반려동물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지금 가정의 반려견은 과거 눈 내리는 한겨울에도 마당 구석의 개집에서 잠자고, 주인 식구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며,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멍멍’ 짖는 그런 개가 아니다.

개의 패션 시대라고 할 만큼 주인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의류들이 개의 온몸을 치장하고 있고, 개 껌과 간식도 등장했다.

잠자리도 마당 한구석이 아닌, 집안에서 주인의 침대를 함께 쓰기도 하고 전용 침대에서 잠을 잔다.

주인이 장시간 집을 비울 동안 개를 돌봐줄 호텔은 물론 개만을 위한 카페와 풀장, 개들이 보는 전용 TV 채널이 나온 지도 오래다. 아프면 사람보다 더 비싼 의료비를 부담해가며 치료를 받는다.

개의 지위도 한껏 격상됐다. 과거 집을 지키고, 사냥하고, 잡아먹히던 개가 아니라 한 가정의 엄연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식당에까지 반려견을 동반해 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개를 자식처럼 아끼지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한참 부족하다.

개는 사람과 친숙한 동물이지만 개 물림 사고처럼 때론 위험한 존재다. 자신의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하지만 개의 몸속에 있는 야생의 본능이 언제 표출될지 모른다.

말을 알아듣고,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간혹 말썽을 부리는데,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개야 오죽하겠는가.

‘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타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개의 크기와 종류, 온순함의 정도에 관계없이 개는 늘 위험한 동물이라는 생각으로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