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으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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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국장대우
물기를 머금은 모래사장을 걷다보면 동전 크기의 구멍이 보인다.

누군가의 집이다.

고향에서는 도롱게라고 불렀는데, 표준어로는 농게인 모양이다.

몸집은 작지만 움직임이 여간 민첩한 게 아니다.

행동이 빠르다보니 오히려 꼬마들의 사냥감이 되곤 했다.

누가 잡을 수 있냐며 대가 없는 내기를 하는 것이다.

이 농게는 꼬마들의 어깨 깊이만큼 모래 속에서 산다.

이 농게를 어떻게 잡을까.

아무 생각 없이 모래를 파다보면 구멍을 잃어버려 농게를 놓치기 일쑤다.

모래를 파면 파고들수록 위의 모래가 밑으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농게를 잡는 방법이다.

먼저 마른 모래를 구멍에 마구 쏟아 부어야한다.

그러면 구멍은 점차 이 마른 모래로 메워진다.

지표면까지 메워지면 재빨리 마른 모래로 이뤄진 공간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면 처음 넣은 마른 모래 밑에 이 농게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농게는 모래 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산다.

사람들은 그 집을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고 말한다.

사상누각은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오래가지 못할 일이나 사물을 일컫는다.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상누각은 벚꽃을 닮았다.

벚꽃은 사람들의 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화려하게 피었다가 어느 한순간 우수수 떨어진다.

지천에 깔린 꽃들도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또다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비장한 최후다.

사상누각도 거센 파도 한 번 치면 한순간에 사라진다.

발 한쪽을 어느 곳에 걸쳐서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집의 형태도 다양하다.

탐욕이나 부패로 지은 집도 있고, 횡령으로 지은 집도 있고, 사기(詐欺)로 지은 집도 있다.

그런 집은 사상누각보다도 못한 집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집의 주춧돌이거나, 기둥이거나, 대문이거나, 창문이다.

또한 먼지일수도 있겠다.

그런 집일수록 비장한 최후 대신 졸렬한 죽음을 맞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죽음을 게가 아닌 개죽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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