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신에게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해신사 전경.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해신사는 1820년(순조 20) 한상묵 제주목사가 안전한 해상활동을 기원하기 위해 화북포구에 지었다.

1841년 이원조 목사가 보수하고, 1849년 장인식 목사는 해신지위(海神之位)라는 위패를 돌에 새겨 사당에 안치했다.

팔작지붕에 전면 1칸의 사당으로 건축면적은 30㎥(9평)에 불과해 작은 암자처럼 보인다.

지금의 건물은 1975년 새로 지은 것으로 제주도기념물 22호로 지정됐다.

유교를 숭배했던 조선에서 용왕을 숭배하는 샤머니즘 사당을 지은 것은 바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의지해야 할 만큼 화북포구는 외부 세력의 침입이 잦았다.

지금도 주민들은 해신제가 열릴 때마다 백지에 음식을 싸서 바다에 던지며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다.

배비장전의 주 무대였던 화북포구는 추사 김정희와 면암 최익현이 이곳으로 올 정도로 유배인은 물론 경래관(京來官·중앙관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해상 관문이었다.

육지와 이어진 뱃길로 사람과 물자가 수시로 드나들면서 화북수전소(해군기지)가 설치됐다.

화북수전소에는 중부·좌부·우부에 판옥선 각 1척과 노를 젓는 격군 180명, 포를 쏘는 사수 87명이 배치됐다.

 

   
▲ 정월 대보름마다 봉행되고 있는 유교식 제사인 해신제.

그런데 1555년(명종 10) 왜구의 침입으로 수전소가 함락됐다. 더구나 이곳으로 상륙한 왜구는 제주성을 3일간 포위했다.

직업 군인 김성조 등 70명이 적진으로 돌격해 왜구를 타격하면서 물리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견고한 군사요새가 필요해졌다. 1734년(영조 11) 김정 목사(1670~1737)는 1만명의 백성과 쌀 300석을 풀어 축항공사를 벌였다.

길이 63m, 높이 4m의 방죽을 쌓고 화북포구를 견고히 했다. 공사를 진두지휘했던 김정 목사는 과로로 병을 얻어 운명을 달리했다.

당시 모든 백성이 슬퍼했고, 그를 기리는 선정비가 포구에 세워졌다.

잦은 침략에서 화북포구를 지켜냈던 제주목사들의 애국정신과 백성을 보살폈던 애민정신은 해신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백성들의 무사안녕과 해상 안전,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바다의 신에 의지하려했던 정성과 기도가 모아져 사당이 세워졌다.

오늘날에도 마을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는 유교식 마을제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봉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