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이후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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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논설위원

한반도 북쪽 지역은 정치이론의 무덤이다. 현대 정치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체제가 70년 넘게 존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긴 세월동안 북한은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하고 기괴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으며, 촘촘한 감시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측근들이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편집증에 걸린 미친 군주는 잔인함과 폭력, 공포로 체제를 구동시키고 있다.

김정남 살해 이틀 후, 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절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나타난 김정은의 모습을 보고 한 언론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눈빛은 어둡고 얼굴은 死神에 가위눌린 듯했다. 아흔 살의 최고인민회의의장 김영남이 몸을 돌려가며 열렬히 박수를 보내는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암살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는 CCTV 동영상이 닷새도 안 되어 TV로 송출되고, 이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경악하게 될 것을 예감했던 것일까.

김정남 암살 이후 북한체제의 향배에 관한 추측이 무성하다. 태영호씨는 한 뉴스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동영상의 파급력을 크게 본다는 평가를 내렸다. 문자나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동영상의 힘은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나 가능했을 법한 암살 장면에 세계가 경악할 것이고, 북한 당국도 이에 대해 우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북한의 처지는 크게 옹색해졌다. 북한이 비자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가 북한에 등을 돌리고 있다. 중국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연말까지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석탄은 북한 전체 수출액의 40%를 차지하고, 그 대부분을 중국이 수입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북한에 미칠 타격을 가히 예상할 수 있다.

자유세계의 다른 나라들의 분노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잠정적일 수 있다. 특히 중국의 행보는 항상 우리를 실망시켰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것은 눈속임이었고 북한은 항상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이번은 뭔가 다르다. 고체연료로 추진되는 북극성-2 미사일을 보란 듯이 쏘아 올리고, 다음 날 김정남을 공공장소에서 암살했다. 여기서 우리는 김정은의 강력함을 보지만 그의 초조함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북한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치 고도화되고 있다. 중국이 경고한 바 있다. 소국인 북한이 핵을 갖는다고 더 안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역설적이지만 큰 울림을 주는 얘기다.

여기에 김정은의 광적인 폭군 기질이 그를 점점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은 점점 위태로워져 가는 북한을 얘기해 주고 있을 뿐이다.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작년에 김정은을 만난 후 김정은이 술을 마시면 하룻밤 새 와인 10병을 마신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의 초조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차우세스크의 몰락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감시사회였다. 그러나 10일이 채 걸리지 않은 기간에 모든 게 무너졌다. 차우세스크는 어느 허름한 농가에서 붙잡혀 크리스마스 날 사형 당했다.

지금은 절판된 ‘광기와 우연의 역사’란 제목의 책이 있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광기와 우연 때문에 격변이 발생한 경우가 허다했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암살 사건에도 엄청난 ‘우연’이 작용했다. 암살 시도가 실패한 것으로 알고 실의에 차 걸어가던 청년 ‘프린칩’ 앞에 황태자의 마차가 거짓말처럼 나타났고, 그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 한반도가 흉포한 광기에 휩싸여 있다. 이런 광적인 분위기에 어떤 ‘우연’이 결합되어 어떤 ‘격변’이 발생한 것인지 필자는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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