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사이비 과학을 대체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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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 교수 경영정보학과/논설위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썼다. 즉, 참인지 거짓인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봉황의 발톱은 3개이다”나 중세 시대에 첨예한 논쟁이었던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앉을 수 있나”는 검증이 안 되기에 논쟁을 해봐야 무의미하다.

그럴듯하지만 확정할 수 없는 애매한 말들을 솎아내고 사실과 규칙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 운이 7할이고 노력이 3할이라는 운칠기삼보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법칙을 믿는 과학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천문학이 자연과학인 반면에 점성술은 사이비 과학으로 평가된다.

천문학자와 달리 점성술사가 하는 말은 모호하고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천문학은 우주 중력장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컴퓨터 인공지능은 사람 대신 비행기 조종간을 잡을 정도로 진화하였다. 과학기술의 시대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인 요소가 남아 있다.

최근 국민안전처 장관후보자로 지목되었던 사람은 자신이 전생체험을 47차례 했으며, 하늘에는 자신의 영혼 정보를 저장하는 블랙박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심지어 굿판에도 참석했었다.

자연과학의 법칙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명성황후는 그 대신 무속에 빠졌다.

명성황후는 무당에게 임금의 건강 운과 신하들의 운세를 점쳤다. 1866년에 명성황후는 명당을 쓰면 운이 트일 것이라 여겨 아버지의 묘를 여주에서 제천으로 이장했다. 명당을 좇는 것은 1894년까지 이어져 명성황후는 아버지 묘를 제천, 이천, 광주, 보령으로 네 번 이장했다. 2003년에는 명성황후의 아버지 묘가 여주로 다시 이장되었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묘는 다섯 번 이장하고 여섯 번 장사를 치르고서야 처음 묏자리로 되돌아왔다.

작년 말 김영삼 대통령의 국립현충원 묘지 안장 때에는 땅에서 커다란 돌들이 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풍수전문가는 “봉황의 알이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봉황을 본 적도 없는 풍수전문가의 말을 곧이 믿은 TV방송과 신문사들은 현충원에서 봉황 알이 나왔으니 길한 징조라고 앞다투어 보도했다.

1893년 아프리카 상가니 강에서 아프리카 원주민과 영국군이 싸웠다. 아프리카 원주민은 창과 방패로 무장한 3000명의 병사였고, 700명의 영국군은 5문의 맥심 기관총이 전부였다. 분당 500발을 쏘는 맥심 기관총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접근도 못하고 쓰러졌다.

1898년 아프리카 옴두르만 전투에서는 5만 2000명의 이슬람 군대와 2만 명의 영국군이 싸웠다. 영국군의 맥심 기관총은 5시간 동안 냉각수를 모두 다 쓸 정도로 총알을 퍼부어 승리했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맥심 기관총의 시연을 보고서는 “총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사이비 과학은 과학을 못 이긴다.

한국의 양궁은 세계 최강이다. 한국의 여자양궁 대표팀은 올림픽 단체전 8연패를 달성했다. 우리는 왜 양궁을 잘할까? 김치 때문이다, 젓가락질을 잘해서이다, 원래 고구려 때부터 활을 잘 쏘던 민족이었다는 그럴듯한 설명을 한다.

양궁은 기록경기이다. 한국의 양궁 대표팀 선발은 파벌도 안 통하고, 누구의 입김도 안 먹히는 오로지 과녁의 점수만으로 대표선수를 뽑는다. 한국의 양궁은 어느 누구의 불평불만도 없을 만큼 투명한 사실과 공정한 규칙에 의거해 운영되기에 세계 최강이다.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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