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산 자가 망자에게 베풀 수 있는 '계획적인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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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담, 목축업 등 풍토적 조건 아우른 유교산물로 해석
▲ 무덤의 기념비성은 살아 생전의 사자의 사회적 권련과 그 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가족공동체, 혹은 사회적 공동체의 갈망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원른 모습

▲산 자의 지위와 품위 죽은 자를 통해 보상 받는다

인류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지구라는 장소에서 지속해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교체의 수순을 밟고 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지상에 남은 자들은 항상 새로 오는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시간은 인간에게 생(生)과 멸(滅)라는 물리적 실체로 답한다. 남은 자들은 새로 오는 자들을 환희로 맞고, 떠나는 자들을 위로로 환송한다. 이때 그 일상 밖의 다른 세상을 위해 바로 무덤과 같은 장법(葬法)의 형식을 취한다.


고금을 통해 보더라도 무덤은 권력의 욕망,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기념비성을 지나칠 수 없다. 기념비성이란 ‘기념 행위를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을 말한다. 무덤과 같은 축조물의 기념비성은 조성 단계부터 기념성을 전제로 하지만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동시대, 또는 후대의 객관적 평가에 의해서도 기념비성이 결정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무덤의 기념비성이란 살아생전의 사자(死者)의 사회적 권력과 그 관계를 지속시키고자하는 가족공동체, 혹은 사회적 공동체의 갈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그 기념비성은 결코 의례 행위와 분리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례를 통해서 기념비성은 강화되고 한 사회 공동체의 체제가 보장되도록 승계(承繼)된다. 가문과 혈통의 이데올로기를 통합하는 가묘와 무덤이라는 의례공간은 가족 내에 기능하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를 강화하는 역할 때문에 ‘정치적 장식’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알로이스 리글(A. Riegl)이 무덤을 ‘계획적인 기념물(intentional monument)’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무덤이 분명한 목적 아래 조성된 의례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례공간들은 기념비성을 띠게 된다. 결국 기념비성은 이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줘 ‘기념비가 기념하고 있는 가치’를 따라 배우게 하고, 기념비의 활력과 정신으로 영광과 명예를 얻게 한다.


조르주 바타이유(G. Bataille)는 “기념비 건축은 원래 사회적 질서의 표현이었지만 이제는 이 질서를 보증해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하기까지 한다. 단순한 상징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주인이 돼버렸다”라고 말하며 기념비성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주체가 된 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무덤의 기념비성은 시대와 조건에 따라 상징적으로 굴절되거나 변형되면서 발전돼 왔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 인식의 변화, 사회공동체의 확장, 종교의 발달 등의 영향으로 삶과 죽음의 끈이 더욱 단단하게 융합되면서 무덤은 삶의 기반을 사후 세계로까지 영속적으로 가져가려는 수많은 상징 행위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인류의 장법(葬法)이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순간과 영원의 관계, 집단과 개인의 관계, 세대 간의 관계, 그리고 개인과 대중 전체와의 관계를 따져 보게 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죽음은 산자의 입장에서 가치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고 죽음의 의례인 장법 또한 죽은 자보다 산 자를 위해 거행되는 의식(儀式)임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산 자를 위해 세우는 상징물로서 산담은,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해 베풀 수 있는 ‘계획적인 기념물’ 이다. 이런 기념물을 세우는 상징적 행위는 ‘산 자의 지위와 품위를 죽은 자를 통해 보상 받는다’는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 점점 사라지는 산담의 모습

지그프리드 기디온(S. Giedion)에 따르면 기념비성은 사회통합의 원리를 위해 이용됐다. 즉, 그것은 ‘한 사회의 이상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만들기 위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념비적인 형식을 주장하는 근대인들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의사(疑似·가짜) 기념비성’에 지나지 않으며, 의사 기념비성은 지나간 시대의 구태의연한 형태”라며 “기념비들은 오직 통합적인 의식과 통합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시기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디온의 말대로라면, 조선 초기 제주에 산담이 등장하는 시기의 상황을 참고 할 수 있는데 산담의 기념비성은 곧, 조선의 사회적 통합원리로 작용했던 성리학의 사상이 조선시대 제주의 목축산업과 석다(石多)의 풍토적 조건을 아우른 유교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산담은 조선의 이데올로기를 ‘모양을 만들어 뜻을 전하고(立像盡意)’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이 기억되고 오래 남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 기념비(산담)들이 산 자들에게 버림받고 보존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될 때 얼마나 비참하고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영광보다는 또 한 번의 슬픔에 놀라게 된다.


오늘날, 산담은 버려진 기념물이 되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vre·1901-1991)는 “기념물의 형태는 죽음 그 자체를 덮어버림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부정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기념물의 지속성은 완벽한 환상을 주지 못한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 “기념물들은 불안을 극복하게 해주고 시간 앞에서 느끼는 공포, 죽음을 다하면서 맛보는 불안감을 장엄함으로 변모시킨다”며 “그러나 그 장엄함의 지속성은 물질적으로 실현된 겉모습을 통해서 죽었다는 가혹한 현실을 대체하지만, 이는 결국 지속적이고자 하는 의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실의 죽음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기념물의 불멸성’은 하나의 표시 즉, 힘의 의지를 떠받친다. 오직 가장 세련된 형태로 나타난 의지, 권력의 의지, 의지를 위한 의지만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거나 극복했다고 믿도록 해주지만 그러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하지만 기념물 공간은 적어도 이념? 건축가(장인)들의 개입을 통해서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 권력과 지식의 결합을 위해 봉사하는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런 탈바꿈이야말로 기념물이 이데올로기 국가기구가 되는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국가기구란 경찰이나 군대에 의한 억압적 국가기구와는 달리 가정, 학교, 종교 장소와 같이 일상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이념을 생산하는 기구인데 기념물 또한 체제를 대변하는 이념을 유포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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