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파괴되는 산담, 마지막 남은 제주 문화의 경종(警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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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개월에 걸쳐 조성되던 조선 왕릉, 작은 봉분만 남겨둔 한 부녀자의 무덤 등 무덤은 망자의 삶의 상황을 반영한다.

▲홀대받는 무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분묘란 ‘사람의 사체(死體), 유골 등을 매장해 제사나 예배 또는 기념의 대상으로 삼는 장소를 말하며 사체나 유골이 토괴화(土塊化·흙덩이 화) 됐을 때도 분묘이다. 또 그 사자(死者)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고 할지라도 현재 제사숭경(祭祀崇敬)하고 종교적 예의의 대상으로 돼 있고 이를 수호봉사(守護奉祀)하는 자가 있으면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분묘, 즉 무덤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6호에 따라 ‘사람의 사체(死體), 유골 등을 매장하는 시설’을 말한다. 이에 따라 ‘사체나 유골이 없는 것’은 법률상 분묘로 정의되지 않는다.


1970년대 이후 제주에 개발 붐이 일면서 분묘, 즉 무덤은 숭상받던 과거의 영화(榮華)와는 달리 마치 대지라는 피부에 붙은 혹처럼 혐오 시설이 돼 박대받는 대상이 됐다. 해마다 벌초 때만 되면, 이 골치 아픈 혐오 시설은 가족, 문중을 속상하게 만드는 처리 대상이 되고 있다. 조상의 무덤을 그대로 두자니 관리할 사람이 없어 앞으로가 점점 더 걱정이다.

 

그래서 집안의 어른들은 ‘당신이 살아있을 때’ 그런 조상의 무덤들을 한곳으로 모아 가족 묘지를 조성하는 것을 일생의 큰일로 삼고 있을 정도다. 또한, 들판의 토지를 밀어젖혀 관광 개발이라도 할라치면 다시 이 무덤들은 골치 아픈 시설이 돼 개발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현재 제주의 무덤들은 진퇴양난으로 다가온다. 집안마다 자신의 조상들의 무덤을 모시고 관리하자니 변화하는 시대가 이를 허락지 않고, 이미 조성된 무덤들을 정리하는 것 또한 땅 문제 등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덤이라고 할 때 ‘사체나 유골이 없는 경우는 무덤으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 반가운지도 모른다.    

 

▲권력에 비례하는 무덤
그렇다면 무덤은 왜 출현했을까? 처음 무덤은 시신 처리의 방법으로 시작됐다. 무덤은 앞서 망자가 자신의 흔적을 이승에 남겨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성됐고, 또는 산 자의 가족들이 집안의 영예를 위해서 만든 욕망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무덤은 죽은 자의 소망, 산 자들의 상징과 표식으로 되고 있는데 그래서 무덤은 기념비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덤의 기념비성은 해당 사회의 역학 관계들의 이데올로기적 실체이다. 그래서 무덤을 중심으로 알 수 있는 사회적 지위와 부(富), 권력과 명예, 무덤의 크기와 같은 사회적 지표들은 망자는 물론 그 문벌 가문의 사회적 영향력에 비례한다. 따라서 우리는 무덤을 통해서 정치적인 측면, 경제적인 측면, 문화적인 측면이라는 세 가지 면모들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첫째, 무덤에는 정치적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선사시대 권력자의 위엄을 보여주는 고인돌에서부터, 영생을 꿈꾸며 죽은 후 보복적인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한 지하 갱에 만든 진시황의 무덤이나 북방의 초원 어딘가에 자신의 시신을 깊숙이 숨긴 칭기즈칸의 비밀 무덤, 언제가 살아나길 염원하는 피라미드의 미라는 역사 속에서 정치적 관계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준다.


둘째, 무덤은 경제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조선의 왕릉과도 같이 지배자의 무덤은 전국에서 산역꾼을 징발해 최소 6개월 이상 조성할 정도로 거대한 역사(役事)의 결과물이며, 제주의 무덤처럼 연고가 없거나 재력이 없을 때 만들어지는 이름 모를 외담 같이 초라한 무덤 또한 경제력과 무관하지가 않다.


무덤은 망자가 살아있을 때의 삶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만약 망자가 살아있을 때 부와 권력이 있었다면, 그의 장례는 성대하고 호화롭게 치러지며, 그런 사람의 무덤은 크고 높고 석물들의 화려한 치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반대로 평민이거나 연고가 없는 부녀자의 무덤은 작고 초라하며 묘비마저 없이 작은 봉분만을 지상에 남겨두어야 한다. 또,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죽음은 ‘아총(兒?)’이라고 하여 표식도 없이 금방 꺼져버릴 것 같은 보잘것없는 크기가 돼 땅으로 돌아간다.   


셋째, 무덤은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다. 무덤은 매장을 선호하는 민족의 문화적 흔적으로서 화장(火葬), 풍장(風葬), 조장(鳥葬) 등의 장법을 택하는 민족과는 생사관이 다르다. 장법은 사후 세계를 보는 관념, 문화 환경이나 풍속적 차이를 나타내는 문화적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무덤은 종교와 풍토적인 영향을 받으며 조성된 순간부터 금기(禁忌)와 숭고(崇高)의 지표를 동시에 갖기도 한다.

 

금기는 사자(死者)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고, 숭고란 사자의 존재를 특정한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자가 되면 모든 과거의 일은 업적이나 칭송의 차원으로 흐르게 되고, 그와 관계된 사건들은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그가 행한 부정적인 일들은 공공연하게 모호하거나 비판적 시선을 제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무덤의 역할이 산 자들의 삶을 더욱 유리하게 해주는 사회적 기능이 있는 한, 그 곳에서 행하는 제례는 망자에 대한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 한때 가문의 영광이었던 무덤도 이제는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들녘을 자세히 보라. 제주의 대표적인 경관이자 아름다운 풍경의 모습을 자랑하던 산담들도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 말 그대로 현재 남아있는 무덤을 이장하여 사체나 유골이 없게 되면, 법률적으로 더 이상 무덤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산담들은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이제 제주의 무덤은 마지막 기로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라고 말한다. 600여 년의 세월 동안 조성된 조상들의 유적에 대해 빨리 판단을 내리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덤을 보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파괴되는 것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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