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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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뉴질랜드에 살다보면 법이나 사회규범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그리고 아주 빡빡하게 집행된다는 걸 실감할 때가 많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가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익숙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알면서도 새삼 놀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에 관한 부분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지난해 뉴질랜드에서는 일곱 살 난 아이가 학교에서 제적돼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교사와 다른 어린이에게 폴더를 집어던졌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 아이는 이전에 연필로 다른 아이를 찌르거나 교사에게 달려들었다가 정학 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일곱 살짜리를 교실에서 몰아내는 건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아이의 부모는 인근에 있는 다른 학교들을 알아봤으나 받아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막막해진 부모가 급기야 교육부에 손을 내밀었고 교육부가 발 벗고 나서서 한 학교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문제를 해결했다. 얼핏 들으면 장난 같지만 엄연히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또 경찰이 여섯 살짜리에게 페퍼 스프레이를 쏜 경우도 있다. 페퍼 스프레이는 시위대를 진압할 때 쓰는 최루탄과 비슷한 경찰 무기 가운데 하나다. 주로 건장한 체격의 공격적인 범인을 제압할 때 사용된다.

아이가 페퍼 스프레이를 맞은 상황도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 역시 장난이 아니다. 아이는 화나는 일이 있었는지 식탁용 나이프로 엄마를 찌르겠다고 소란을 피우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로부터 매운 맛을 보고 나서야 무릎을 꿇었다. 페퍼 스프레이의 따끔한 맛을 본 아이는 그만이 아니다. 지난 5년여 동안 경찰이 12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페퍼 스프레이를 사용한 게 대여섯 번이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다. 코흘리개들이 학교에서 쫓겨나고 페퍼 스프레이를 맞아도 그다지 놀라는 분위기가 아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할 어른들이 한줌짜리도 안 되는 아이들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없었고, 으레 나올 법한 과잉대응이니 과잉진압이니 하는 질타도 없었다.

물론 아동 인권을 외치는 시민단체 없었고, 뒤늦게 그럴 듯한 처방을 내놓는 전문가도 없었다. 놀랍게도 학교와 경찰이 대응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며 자신들의 입장만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뉴질랜드 사회의 공감대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그랬다간 교사나 경찰이 자질부족으로 호된 비판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선도와 선처를 처벌보다 더 높은 도덕적 가치로 보는 한국인들에게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싹수가 노란 비행 청소년에게도 무조건 선도의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성선설을 신봉하는 한국인들의 정서다. 그게 사랑이고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어른은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가 돼 품에 안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선처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특권쯤으로 치부되는 것도 그런 감성적 접근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재판에서 피고인 진술은 선처를 읍소하는 말로 매듭지어질 정도까지 됐을까. 선처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게 교육적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한 번쯤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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