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속에 세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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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혜/수필가

 

동지섯달, 철 잃은 코스모스가 남조로변에 피고 있다. 그뿐이랴, 곳곳에 개나리진달래가 피었다는 보도다. 멋모르고 핀 벚꽃도 철없기는 마찬가지다. 웬일일까. 이번 소한(小寒)은 그냥 봄날이네. 눈이 쌓여야 할 자리에 빗물이 괸다. 복수초도 이미 홍릉 숲에 소한 무렵에 피었다니 정말 봄이 왔나?

 

지난 가을부터 이상 조짐이 보이기 시작 작했다. 아니 여름도 이상했다. 장마가 져야 할 때 가물었으니 마음까지 타들어 갔다. 수분 부족으로 밀감은 크지를 못했다. 대신 당도는 오르고 신맛은 빠지지 않았다. 충청 해안 지방은 저수가 밑바닥이 나서 제한 급수를 하고 급수차가 다녔다. 농부는 자신이 목마른 건 참아도 벼가 시드는 건 차마 볼 수 없다고 논에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조생 밀감을 수확하는 십일월이 오자 이틀도리로 비가 왔다. 가을장마로 밀감을 딸 겨를이 없으니 농부의 마음이 비에 젖는다. 비가 잦아 보리밭, 라이그라스 밭은 진초록이다. 한 겨울 속의 봄인가 여름인가.

 

수퍼 엘니뇨가 왔기 때문이란다.

 

엘니뇨가 무엇이길래 지구가 철을 잃었단 말인가. 적도 근방의 온도가 섭씨 0.5도 높아져도 엘니뇨가 오는데 이번엔 더 높았다나. 바다 수온이 올라 수증기의 증발이 많아지니 세계 곳곳, 페루를 비롯 남미에서, 미국 중남부에서 중국에서 겨울 홍수가 나고, 우리나라도 비가 잦고 예년보다 해수면 온도가 올라 김이나 감태도 엉망이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 하더니 근간엔 이한이십온(二寒二十溫)이 되었다나.

 

웬걸, 대한(大寒) 직전에 겨울 속에 세(貰)들어 살던 봄이 알몸으로 쫓겨났다. 추상 같은 집주인이 제 집을 찾아 왔다. 북극의 온난화로 제트 기류가 구실을 못하자 한파가 지구상을 덮었다. 미국 동부도 오끼나와도 타이완도 눈 폭탄 세례와 강추위로 인명 피해도 많았다. 제주도 몇 십 년 만에 눈의 왕국이 되었다. 지구는 그야말로 곳곳이 스노마겟돈으로 꽁꽁 얼어 붙었다.

 

엘니뇨는, 인간의 체온이 올랐다고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미열만 있어도 오한이 나서 잠을 못 잔다. 바로 입술도 부르튼다. 그런데 체온이 섭씨 2도 올라 삼십 구도 가까이 되면 뭔 사단이 난 것이다. 독감 같은 바이러스나 세균이 감염된 것이다.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그것들을 잡을 수 있다.

 

지구도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아닌가. 사람이 쳬온에 민감하다면 기온(氣溫), 수온(水溫), 기압이 지구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적도와 북극이 이유 없이 기온이 상승했을까. 문제의 온실가스가 적도부근의 온도 상승을 부추겼고 북극의 빙하는 맥없이 녹았단 말인데. 그러고 보면 엘니뇨는 인간이 지구에게 씌운 세균이고 바이러스다. 수퍼 엘니뇨, 더 악성이다.

 

이러다 지구상에 제철이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엘니뇨와 라니냐가 시도 때도 없이 온다면 인간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우선 곡물 같은 먹을거리에 차질이 생길텐데 어쩔거나. 이미 아프리카에 비가 오지 않은지 오래지 아닌가.

 

삶과 날씨, 그리고 엘니뇨, 아무래도 공통분모가 같아 보인다.

 

인생이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날씨, 그야말로 변덕쟁이다, 엘니뇨 라니냐, 봄이랬다 겨울이랬다, 비왔다, 눈왔다. 심술꾸러기이다.

 

엘니뇨, 라니뇨, 지구의 외침이다. 하늘의 경고이다

 

 백나용 기자 nayo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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