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겸 미술치료사인 이은주 작가(44).

 

 2012년 여름, 지친 나 좀 품어 달라며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안겼다. 그리고 가시리는 아무런 말도 않고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그녀는 제주로 삶의 터를 옮겼다.


이 작가는 서울 출신으로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후 순수미술과 설치미술을 줄곧 해왔다. 특히 대안 전시 공간을 활용한 작품 전시와 기획을 많이 했다.


그러다 미술활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 궁금해 예술치료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후 미술치료사로 10여 년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왔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정작 자신의 지친 마음은 달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순간, 그녀는 맨 먼저 제주를 생각했다.


그녀에게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주를 여행하며 의식하지 않고 편히 숨 쉬었던 기억이 그녀를 제주로 이끌었고 2010년 올레길을 여행하면서 맺은 인연을 좇아 가시리에 정착했다.


가시리는 그녀에게 가시리(加時里)었다. 그 곳에서 사는 동안 본래 갖고 있던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이 더해져 천천히 느리게 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도로를 점령하고 누워있는 개들만 봐도 가시리를 알 수 있다”며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서 함께 평화롭게 사는 그 곳에서 나 역시 오롯이 나를 품을 수 있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렇게 가시리에서 1년쯤 살던 그녀는 제주시 삼도동으로 이사했다.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서울에서 제주로 공간이동만 한 삶을 원치 않았다. 1년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품어줬던 제주와 동화되고 싶었고 육지와는 또 다른 제주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이 작가는 “하나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무가 되 듯 나 역시 성장하면서 학부전공과 전시기획, 미술치료 등 가지를 뻗는 시기를 보냈다면 이를 하나의 나무로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특히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재능으로 제주와 제주사람들이 미처 표출하지 못하고 있는 숨은 문화예술성을 꽃 피우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최근 일도1동 문화의 집에서 ‘와랑와랑 문화 놀이터’를 진행하고 있다.


‘와랑와랑 문화 놀이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선생님이 돼 자신의 삶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 술을 담그는 방법 등 그 어떤 것이든 그들이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싶은 풍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을 계속해서 찾아 나간다.


이 작가는 “대부분 문화예술은 특정인들만 향유하는 것이고 틀에 박혀 있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을 한다”며 “하지만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람들은 나날이 자기 자신을 새로이 하면서 인생을 디자인 한다”며 “결국 모두가 매일 창작활동을 펼치며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는 여전히 창작활동을 낯설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자이자 미술가이자 상담자로서 제주에서 계속해서 힘쓸 예정이다.


“제주가 나를 치유해 줬듯이 나도 제주를 치유하면서 살고 싶어요.”


백나용 기자 nayong@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