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뜯는 소리가 온 방을 휘감는다. 깊고 그윽하게, 바쁜 듯 아닌 듯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월에 사무친 손끝에서 가야금 현들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튕겨 오르기도 하고 폭포처럼 시원하게 내리 꽂히기도 한다.


한 줄을 튕기면 옛 님이 생각나고 또 한 줄을 튕기면 달빛을 실은 선율이 가슴을 뜯는다고 했던가. 이내 부드럽고 감미로운 가야금 선율에 빠져드니 온 방 안 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도 그 절절한 소리가 공명한다.


송인길(69)은 70평생 동안 가야금 외길을 걸어온 국악인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지금은 까마득한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가야금을 시작했다. 그 후 국립국악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국악과, 동대학원을 거쳐 국립국악원 단원에서부터 예술 감독까지 평생을 국악과 함께 했다. 가야금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친한 벗이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6년 전 산과 오름, 곶자왈이 주는 초록의 숨결이 좋아 제주에 온 그는 현재 제주국악관현악단 예술 감독을 맡아 국악의 볼모지인 제주 땅에 국악의 씨를 뿌리며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송 감독은 “서울과 달리 제주는 어디를 가나 푸르른 자연을 만날 수 있어 삶이 마냥 행복하다”면서도 “하지만 국악에 관해서는 황무지나 다름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학교부터 정년퇴직까지 국가의 돈으로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송 감독은 늘 가슴 한 켠에 평생을 바쳐온 국악을 통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제주도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제주에서 꺼져가는 국악의 불씨를 다시 키우는 일이었다. 


“제주에 교사국악관현악단이 있었지만 국악 하는 교사가 몇 안 돼서 얼마 안 가 활동이 중단됐다”고 언급한 그는 “이후 더 이상 국악인을 양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다. 제주에도 국악이 뿌리내리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제주국악관현악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적인 보물섬이자 세계 유수의 관광지인 제주에는 우리 음악인 국악이 양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광객들이 제주에 오면 낮에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보지만 밤에는 볼거리가 마땅치 않다. 또 제주에서 접할 수 있는 음악은 대부분 퓨전 음악이나 서양 음악”이라며 “제주 특성과 우리나라의 웅장하고 화려한 음악을 조합한 공연을 마련해 한국 음악의 진수를 맛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악을 자주 접해야 그 맛과 멋을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 송 감독은 매년 제주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초청 공연과 국악 교실 등을 통해 도민들에게 국악을 알리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국악 불모지를 일구고 있는 그는 머지않아 열매가 맺히길 소망하고 있다. 바로 제주국악관현악단을 주춧돌 삼아 제주국립국악원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제주국립국악원을 건립해 그동안 육지와 떨어져 있어 전통문화를 맘껏 접하지 못했던 도민들에게 전통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해 진정한 문화 르네상스를 이룩해야한다”며 “하지만 소규모 단체나 일반인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주도정에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주가 천년을 이어온 국악 소리 가득한 세상이 돼야 한다”며 “그 소리가 제주 구석구석을 휘감고 도민들이 저마다 국악의 색과 깊이를 느끼는 세상이 하루 빨리 열리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전했다.

백나용 수습기자 nayong@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