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명의 예술 인생은 우연에서 시작돼 필연으로 귀결됐다.

 

원래 그녀의 장래 희망은 문학인이었지만 조수미의 노래를 듣는 우연에서 인생 목표가 바뀌었고 결국 재능과 열정이란 필연적인 요소를 갖춘 덕에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했다.

 

제주여고 재학 때 강혜명의 꿈은 시인이었다. 특별활동반도 문예부였고 대학도 국문과 진학을 원했다. 그러던 중 2학년 때 텔레비전에서 마주한 조수미가 그녀의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

 

강혜명은 “조수미 선생님의 노래에서 목소리가 세상 최고의 악기란 사실을 깨달았다”며 “음악가를 권유했던 김군식 선생님과 어머니와 상담한 후 성악가의 길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강혜명이 꼽는 터닝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자신을 성악가의 길로 인도했던 조수미와의 대면이다. 강혜명은 2006년 프랑스 칸느에서 조수미와 한 무대에 섰다. 당시 강혜명은 ‘높은 산’을 만나 가슴 벅차고 설레면서도 그 산을 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채찍질을 스스로에게 가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했다.

 

두 번째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의 만남으로 진정한 프로의 세계를 엿보고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는 계기로 작동했다.

 

세 번째는 비엔나 콘체르토 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타이스’에 주인공이었던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대역으로 참가한 일이다. 강혜명은 세계적인 지휘자 미쉘 플라송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그의 추천으로 프랑스의 3대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중 한 곳인 발마레트와 계약했다.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다=강혜명은 유년시절부터 노래를 곧잘 불렀다. 초등학교부터 여고 시절까지 도내 음악 콩쿠르를 석권했고, KBS어린이합창단에서 활동하며 솔로를 도맡았다.

 

강혜명은 “말하긴 쑥스럽지만 노래 하나는 내가 최고란 자부심을 갖고 자랐다”고 회고했다.

 

강혜명의 음악적 재능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유전자에서 물려받았다. 어머니 박옥순씨(62)는 타고난 고운 목소리를 앞세워 한때 가수를 꿈꿨었다.

 

그러던 중 박씨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꿈을 접었다. 강혜명은 “만약 어머니가 가수가 됐다면 패티김에 버금갔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저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강혜명은 “어머니가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봉사활동을 펼치며 살고 있다”며 “제가 음악을 통한 기부를 실천하게 된 것은 오롯이 자신의 삶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계신 어머니를 보고 배운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아버지 강용기씨(64)는 태권도 제주도 대표 출신이다. 강혜명은 “아버지는 태권도인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오셨다”며 “어릴 때 아버지가 딴 메달이 집 안 가득 쌓여 있었다”고 반추했다.

 

 

 

▲‘제2의 조수미’ 세계를 누비다=강혜명은 제주여고를 나와 추계예술대 성악과를 수석으로 입학·졸업한 후 2000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로마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을 수료했다. 이 때 그녀는 수십 여 개의 크고 작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세계 성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3년 강혜명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일본에서 기획한 오페라 ‘카르멘’ 오디션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무대에 올랐다. ‘카르멘’은 프랑스 오페라여서 그녀는 새삼 프랑스 음악에 대한 학습 욕구를 느껴 프랑스로 향한 후 2005년과 2006년 장학금을 받고 에코르 노르말 고등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료했다.

 

이어 마르세유 국립오페라센터에 국비 장학생으로 들어간 강혜명은 학습과 실전을 병행하던 중 입학 10개월 만에 오페라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프로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2007년 마르세유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 그것이 강혜명의 데뷔였다.

 

강혜명은 2007년과 2008년 시즌에 마르몽드 페스티벌과 메리낙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진주 조개잡이’에 출연했다. 2008년과 2009년 시즌엔 몽펠리에 오페라극장의 라디오 프랑스 페스티벌에서 공연했고 프랑스오페라협회 주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오페라 ‘라임스의 여행’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이후 ‘나비부인’, ‘미레유’, ‘트라비아타’ 등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현지 언론들은 강혜명에 대해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인 조수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 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하는 동양의 소프라노”라고 호평했다.

 

이후 세계무대를 누벼온 강혜명은 최근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중남미를 대표하는 멕시코 시립 오케스트라와 단독으로 협연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 클래식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예술을 표현하는 연주자’ 꿈 꿔=강혜명은 “예전에는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젠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작곡가의 의도를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하고 최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특히 강혜명은 성악가를 넘어 ‘예술을 표현하는 연주자’를 추구한다. 그녀는 “관객들에게 오페라의 스토리를 왜곡 없이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성악가의 역할”이라며 “무대에 서면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작곡가가 의도한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혜명은 “예술가는 안락함을 경계하고 늘 긴장 속에서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며 “예술가가 온힘을 모두 쏟을 때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울림이 깊어지고 그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음악의 숭고한 가치가 완성된다”고 예술적 지향점을 설명했다.

 

 

 

▲제2의 삶은 제작자 혹은 감독=3년 전 강혜명이 고향에서 예술의 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실험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를 살짝 암시했다. 당시 강혜명은 오페라 ‘라보엠’의 주역을 맡은 것은 물론 기획부터 연출까지 공연 전반을 처리했다. 공식적인 역할은 예술 감독과 연출, 주연.

 

강혜명은 “오페라 연출과 제작에 관심을 가져오던 중 제작자로서 역량을 시험했다”며 “공연을 무사히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에 밤을 지새운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회상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공연 일주일 전에 티켓이 모두 매진됐고 내용도 호평을 받았다. 강혜명은 변함없이 공연의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한다고 약속한 후 실행으로 옮겼다.

 

강혜명은 “오페라 등의 기획과 제작을 포함한 예술을 통한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다”며 “아마도 20년 쯤 후에는 공연 제작자나 감독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노래하는 가수로써 현재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강혜명은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춰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디지털 음반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제주는 또 다른 나의 어머니=강혜명은 지난 3월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4·3의 노래 발표회 무대에 섰다. 제주4·3평화재단이 전국 공모를 통해 제작한 4·3 노래 ‘빛이 되소서’ 등이 그녀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울려 퍼져 도민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냈다.

 

그동안 강혜명은 세계를 무대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고향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뜻 깊은 무대가 열릴 때면 기꺼이 시간을 쪼개고 스케줄을 조정해 제주를 찾았다. 2010년 제주의 대표 공연장으로 조성된 제주아트센터 개관 기념 연주회도 그 중 하나다.

 

강혜명은 “프랑스에서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하던 시기여서 정말 시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고향을 대표하는 새로운 공연장이 생긴다는 반가운 소식에 꼭 참가해야겠다고 결심해 극장에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후 어렵사리 허락을 얻어 제주를 찾았었다”고 술회했다.

 

2003년 2월 ‘제주 세계 환경수도 염원’ 신년음악회와 지난해 6월 서귀포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 무대, 올해 제주 아름다운 가게 10주년 기념 콘서트에도 강혜명은 얼굴을 비췄다.

 

강혜명은 “제주 출신 음악인으로서 고향의 문화예술적인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에는 반드시 참여해 격려하고 응원하자는 기준을 정해 지켜왔다”며 “세계 평화의 섬 제주에 문화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돕겠다”고 다짐했다.

 

강혜명은 “제게 제주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넘어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언제나 제주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을 얻는다”며 “고향을 위해 헌신하려고 섰던 무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무한한 사랑과 에너지를 받곤 했다. 도민들의 사랑에 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