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요? 돌멩이 하나도 예쁘고 시시각각 구름 변하는 모습은 황홀한 곳이죠!”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약 5500㎡ 규모의 한 감귤농장에는 ‘딴따라 농부’가 살고 있다. 최근 만난 이 여자 농부는 밝고 쾌활했다. 말할 때 제주방언도 곧잘 갖다 붙였다.

 

이 농부는 서울 출신 신선경씨(38)로 원래 직업은 재즈피아니스트다. 부산 경성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녀는 뒤늦게 음악의 매력에 빠졌다. 피아노는 7살 때부터 쳤고 재능도 있었다.

 

백석콘서바토리에서 실용음악을 배운 신씨는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을 꿈꾸며 미국 버클리 음대 입학허가를 받아 유학을 떠나려고 했다. 2010년 일이었다. 출국 날짜를 잡고 비행기 티케팅까지 마친 후 잠시 쉬러 제주를 향했다. 그게 인생 전환의 ‘발단’이었다.

 

“일주일 머물 요량으로 제주에 와서 제주올레 1코스를 걸었고 성산읍 시흥리에 있는 ‘할망민박’에 투숙했어요. 그런데 투숙기간이 한 달로 길어졌고 다시 석 달로 늘어나더라고요.”

 

그녀는 동네 주민들의 부름을 받아 과수원에서 감귤 따고 무공장에서 일했다. ‘딴따라’에 ‘농부’ 모습이 차츰 보태지더니 결국 제주에 눌러앉았다. 2012년엔 유학비를 털어 감귤농장을 매입했다. 신씨는 유기농법으로 귤을 재배해 팔고 돈을 모아 차근차근 집을 짓고 있다.

 

딴따라로서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은 제주 아주망(아줌마의 제주방언)들의 예술적인 끼를 놓치지 않았다.

 

“아주망들이 일할 때면 노동요를 자주 불렀는데 노래의 결이 다를 뿐이지 그녀들의 솜씨는 여느 명창에 못지않았다”고 지적한 신씨는 “제주 여성들은 예술적인 유전자가 뛰어나고 그만큼 제주는 문화적인 자양분이 풍부한 곳”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주문화에 대한 예찬론은 계속됐다. “최근 접한 제주큰굿은 문화적인 가치가 어마어마하죠. 도민들을 만나면 당신은 예술가란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녀들에 비하면 예술적인 성숙도에서 저는 아기나 다름없죠. 미숙한 제가 이런 말을 해선 안 되는데….(하하하)”

 

그녀는 농부로 변신한 후에도 예술가의 기질을 발휘해 각종 예술 이벤트와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피아노 연주에도 나선다. 동네 슈퍼에서 주민들에게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고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도 일과 중 하나다. 마을 행사나 체육대회 등에도 꼬박꼬박 참가한다.

 

신씨는 “음악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영혼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수단”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나의 벗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한 친구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그녀는 감귤농장에서 팜파티를 열고 성산읍 쏠 페스티벌 연주회도 기획했다. 성산일출제와 서귀포칠십리축제 프로그램 기획에도 참여했다. 팜파티는 ‘귤 밭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 놓고 연주하겠다’던 그녀의 꿈을 귀담아 들은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보태 마련했다.

 

지인과 관광객 70여 명이 참가해 1박2일간 진행된 파티에서 피아노가 연주되고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음악 감상하고 사진 전시 보며 귤상자로 만든 테이블 위에서 수제 맥주를 마시고 셰프가 만든 요리를 먹었죠. 사람들은 귤나무 아래 텐트 치고 잤어요.”

 

신씨는 “제주는 소중하고 보배로운 곳인데 본래 모습이 자꾸 사라지고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서울에선 매일 아침에 깨면 습관적으로 음악을 틀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음악이 흐른다. 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 하나하나가 천상의 음악”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녀는 협동조합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협동조합을 겸한 이주 예술인 모임이 될 전망이다. “본토 문화를 제주형으로 바꿔야죠. 이주 예술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갖고 와서 제주에 적용해선 안 됩니다. 육지 것의 답습이 아니라 제주 문화로의 동화가 필요합니다.”

 

신씨는 “제주에선 사람들이 말하는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말하자면 ‘어머니의 땅’ 같은 곳으로 여기서 오래 살다 죽어 묻히고 싶다”며 각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럭비공 마냥 예측 불허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대뜸 그냥 원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살겠다며 그게 지금까지 자신이 구한 답이란 말부터 튀어나왔다.

 

“삶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며 그것을 하나씩 이루는 과정이겠죠. 살고 싶은 대로 살 거예요. 이력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알몸으로 까놓고 보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느릿느릿 내가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일궈갈 겁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