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한림읍 금악리는 중산간 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예로부터 교육열이 높았던 곳으로 문헌에 기록돼 전해 내려온다.


금악리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 한림에 보통학교가 설립돼도 거리가 멀고 경제적 능력 부족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기 힘들게 되자 지역 유지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4년제 개량서당인 금악서당(일신의숙)을 설립하기도 했다.


1943년에는 금악공립국민학교가 개교했지만 제주4·3의 와중인 1949년 10월 폐교의 아픔을 겪었다. 학교와 마을이 불타고 주민들은 해안 마을로 소개되는 극항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4·3사건이 수습되고 주민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정착하면서 1954년 금악리와 상명리를 학구로 해 한림국민학교 금악분교장이 설치됐다.


학생 수가 늘면서 마침내 1957년에는 금악국민학교로 승격됐고, 1980년대에는 8학급이 편성되는 등 학급 수도 증가세를 이어가 지역의 교육 여건은 안정적인 모습을 갖춰 나갔다.


그러나 다른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젊은 층의 이농 현상이 가속화하고 출산율 감소까지 겹치면서 금악초도 학교의 존립 여부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학교 살리기 시동=지역사회에서 학교는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한다. 마을의 주요 행사도 대부분 학교에서 이뤄진다.


특히 중산간 지역의 경우 학교가 갖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학교의 존폐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자 금악리는 1990년대 말부터 학교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금악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학교 살리기 방안도 우선은 자녀를 둔 외지인의 영입이었다.


마을에서는 빈 집(사용하지 않는 밖거리 중심)을 정비하고 학생 유치에 나섰다.


지금까지 정비한 빈 집은 16동 정도로, 해마다 마을에 돈이 모이면 그때그때 빈 집 정비에 사용했다.

문제는 감소세가 주춤하던 학생 수가 또다시 줄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52명의 재학생 중 6학년이 12명, 5학년이 11명으로, 취학 예정 인원을 감안할 경우 몇 년 지나지 않아 30명대까지 감소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 살리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설상가상 빈 집을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빈 집 자체가 드문데다 제주 땅에 대한 열풍으로 인해 설령 밖거리가 비어 있어도 언제 팔릴지 모른다며 빌려 주지 않으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금악리는 지난해 시도하다가 부지 문제 때문에 해를 넘긴 임대용 공동주택 건립을 올해 또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대신 이 마을 출신 젊은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해 추진한다는 구상인데, 박준범 이장은 이를 “집토끼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과거에는 제주시지역 등의 집값이 저렴한 반면 기동력은 떨어졌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박 이장은 “금악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모두 30분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제주시 집값이 너무 비싸고 대부분 자동차를 갖고 있어 고향에 살아도 큰 불편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동주택 우선 보급이나 리모델링 등을 통해 아직도 애향심과 애교심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 고향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는 바탕을 지속적으로 만들아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박 이장은 중산간 주민으로서 느끼는 학교의 소중함을 “아기 울음소리와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라는 말로 압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