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바다로 일 나간 남편 죽자 목을 맨 고씨 부인의 절개 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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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면 용수리 절부암
   

겨울 막바지 한파가 누그러진 후 찾은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의 절부암(節婦岩). 용수 포구 남쪽에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자그마한 숲이 있다.

 

사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난대식물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절부암’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의 비통한 사연이 서려 있다.

 

바위 앞면에는 한자로 ‘절부암(節婦岩)’, 바로 위에는 ‘김응하(金應河)가 쓰고 동수(同首) 이팔근(李八根)이 새겼다는 글귀가 있다.

 

또한 절부암 마애명(磨崖銘) 맞은 편 바위에는 이 ‘절부암’의 전설을 조정에 알리고, 글을 새겨 표창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한 ‘판관(判官) 신재우찬(愼栽佑撰)’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고씨 부인의 절개

조선 말기 이 마을에 고씨 성의 16살의 처녀와 강사철이라는 총각이 살았었다. 둘은 서로 사랑해 혼인을 치렀으나 가난한 살림을 면치는 못했다. 남편 강 씨는 마을 앞바다에 있는 차귀섬에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대바구니 등 죽세품을 만들어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평소처럼 대나무를 베러 차귀도로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고 씨는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시신이라고 찾으려고 하늘에 기원하며 해안가를 배회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러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고 씨는 결국 소복단정하고 용수리 바닷가 숲속(절부암이 있는 곳)에서 목을 매고 말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고 씨가 목을 맨 자리 아래로 남편 강 씨의 시신이 떠올랐고 이 일이 멀리까지 퍼지게 됐다.

 

그 때 인근 마을인 대정고을에 살던 신재우라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과거에 급제하면 열녀비를 세워주겠노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강 씨 부부와 판관 신재우와의 인연

그러나 신재우는 과거에 낙방하고 빈둥빈둥 놀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강 씨 부부나 나타나 한 번 더 과거를 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신재우는 열녀비를 세워주겠다고 한 말이 기억나 다시 학업에 전념, 결국 과거에 합격해 대정 현감으로 임명됐다.

 

과거에 합격한 것이 강 씨 부부의 보살핌 때문이라고 생각한 현감은 부임 즉시 조정에 고 씨 절개의 사연을 상소해 바위에 ‘절부암’이라고 새기게 하고 부부의 시신을 합장해 음력 3월 15일에 큰 제를 올리도록 했다. 오늘날에도 한경면 용수리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5일이며 절부암 앞에 마련된 제단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현대 부부상의 표상

절부암이 있는 곳은 제주올레 13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면서,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배를 타고 귀국하다가 거센 파도에 밀려 표착한 곳으로 현재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이 들어서 있으며 순례길(김대건길) 1코스이기도 하다.

 

이처럼 빼어난 절경와 애틋한 사연 등이 한데 모여진 이 구간은 많은 올레꾼과 관광객,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데, 이중 상당수가 절부암을 찾아 강 씨 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접하고 있다.

 

절부암 앞 제단에는 음력 3월 15일이 아닌데도 사과와 밤 등의 제물(祭物)이 놓여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놓고 간 것”이라고 마을 주민이 전했다.

 

198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이 절부암은 현대인들에게 부부간에 지켜야할 도리에 대해 많은 교훈을 전하고 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혼부부들은 친지와 하객들 앞에서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백년해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결혼 후 몇 년 만에 상호 간 사소한 의견충돌도 해결하지 못하고 백년해로의 혼인서약은 뒤로한 채 이혼장에 손쉽게 도장을 찍고 있다.

 

특히 제주는 전국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곳이어서 많은 부부들이 다시 한 번 고 씨의 절개를 되새겨 볼만 하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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