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1초
인생의 1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수감생활 8개월을 넘긴 추운 어느 날 그는 최종판결을 받기 위해 재판소로 향했다. 그러나 금명간 석방되리라던 그의 기대는 판결이 내려질 광장에 도착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우울한 얼굴로 신부가 그를 맞이했고, 신부의 뒤편에는 총을 든 병사들과 수천의 구경꾼이 늘어서 있었다. 또한 광장 한 가운데는 검은 천에 싸인 교수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쪽에는 관이 실린 손수레가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죽음을 예고했다. 그는 체념한 채 교수대로 끌려갔다. 장교가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총살형을 알리는 판결문을 낭독하자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무심코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나가는 구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는 허망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에 갑자기 ‘만약’을 떠올렸다. “지금 내가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으리라.”

▲혜성처럼 나타나 러시아 문단을 뒤흔들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물아홉 살 때 농민반란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돼 이날 교수대에 섰다. 고해성사를 끝으로 병사들은 그에게 검은 두건을 씌웠다. 병사들이 소총을 겨누는 소리가 들였다.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들려야 할 바로 그때 마차가 광장을 질주해 들어오는 요란한 소리가 들였다. 차르의 감형 결정을 전하는 너무나 반가운 마차였다.(차르 니콜라스는 그에게 모진 교훈을 주기위해 이 같은 잔인한 연극을 펼쳤다.) 감형됐지만 그는 4년간 팔과 다리에 쇠고랑을 찬 채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 사건 그날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생각했다. 감옥에 있을 때나, 복역한 후에나 미친 듯이 집필에 매달렸다.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파헤쳐 문학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죄와 벌’등과 같은 작품은 그가 생사를 넘나들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집필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실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혹독한 환경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편안함이나 안락함으로 나태해 질 것을 몹시 두려워한 탓이다. 그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면서 생과 사를 가른 ‘1초의 의미’를 후세에 남겼다. 오늘 그를 떠올리는 이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