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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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1510년(중종 5년) 9월 16일 장림(張琳)이 제주목사로 부임해 쓴 방어 시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대정현의 차귀포와 동해포는 적들의 배가 머물 만한 곳으로 의심이 됩니다. 때문에 이미 설치된 방호소에 육군 1려(旅)를 나누고 2교대로 나누어 군관을 보내 방어토록 했습니다. 수산포과 차귀포에는 옛 성을 고쳤고, 함정과 말뚝을 세워 침입에 방비했습니다만 나머지 7포는 원래부터 성이 없었으므로 방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함경도나 평안도의 예에 따라 성을 쌓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인포제주’ 인용)

당시만 해도 외침이 늘면서 제주 지역 방어에는 방호소, 연대, 환해장성, 진 등이 필요했다.

제주목사가 장계를 통해 언급했던 동해포는 ‘도래물’이라고 불려졌던 회수마을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동해방호소가 이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강정마을에 있던 가래방호소(加來防護所)를 제주목사 장림에 의해 동해포로 옮겨졌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탐라지(1653년)에서도 “동해방호소에는 객사와 군기고가 있는데, 경오년(1510년)에 강정마을의 가래방호소를 여기로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동해방호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동이수’(동해수)라고 불리던 샘이 남아 주민들이 이용했지만 이제는 모두 매립된 상태다.

탐라순력도에서도 서귀진의 조련과 군기 및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 있다.

‘서귀조점’으로 1702년(숙종 28년) 11월 5일의 순력. 서귀진내의 병고와 창고, 객사 등이 보인다.

▲강정마을은 이제 논농사도 지을 수 있을 정도인 깨끗한 수질로 자연생태우수마을로 변모했다.

변수연대, 마희천연대 등 역사적 방어유적과 함께 많은 자연관광자원을 간직하고 있다.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이 지난 14일 해군기지 후보지로 최종 결정됐다.

변화를 선택한 강정동 마을회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군기지 건설이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가래방호소가 해군기지로 나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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