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공식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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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00년 전에 있었던 예나전투는 나폴레옹을 전쟁의 달인으로, 그리고 호엔로에를 비롯한 프로이센 장군들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이 전투에서 선보인 나폴레옹의 전략과 전술은 당시로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상천외 그 자체였다. 기동력을 최대한 살리는 것으로 지금의 게릴라전과 유사했다. 그런 만큼 병사들은 기강 해이로 비쳐질 정도로 유연했다.

반면 프로이센의 호엔로에 장군은 프리드리히 대왕 밑에서 전략과 전술을 배워 전통적인 전쟁방식의 대가였다. 그것은 길게 대형을 갖춘 후 북소리에 맞춰 전진하면서 적에게 위압감을 주고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이러기 위해선 엄격한 지휘체계가 필요했다. 그러니 프로이센 병사들은 명령에 죽고 살았다.

예나전투는 이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군대가 벌인 전쟁이었다. 무려 3만 50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지만 전투내용은 일방적인 게임으로 흘러 다소 싱거울 정도였다.

호엔로에는 배운 대로 병사들에게 완벽한 대열을 갖춰 한발 한발 진격토록 했고,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이리 저리 몸을 숨겨 뻣뻣이 걸어오는 적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호엔로에는 크게 당황했지만 프로이센 전투방식이 최고라고 확신했기에 다른 전술은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프로이센은 사실 나폴레옹을 연구할 시간이 10년이나 있었다. 군을 혁신할 시간도 충분했다. 일례로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놀랄만한 속도로 이동한다는 점에 주목했다면 느려터진 짐수레로 보급품을 나르는 프로이센의 현실을 자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왕시절 거둔 성공으로 딴 생각을 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과거의 성공이 혁신의 장애물이었던 셈이다. 로버트 그린은 저서 ‘전쟁의 기술’에서 “지금도 프로이센의 어리석음이 재현되고 있다”며 “전에 잘 먹혀들던 그 무엇이 우리를 현실로부터 보호하는 조개껍데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사회도 근래 단단한 조개껍데기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잘 먹혔던 공식만을 지금도 되뇌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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