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盲
漢盲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본적지를 한자(漢字)로 써보라는 시험문제를 냈더니 48명 중 단 1명만 제대로 써냈다고 한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대학가에서 한자를 둘러싼 진풍경이 벌어진다.

한자로 표기된 서적을 찾지 못해 그림을 그리다시피 한 책제목을 도서관에 내미는 학생이 허다하고, 심지어 부모형제들의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해 성(姓)은 한자로 쓰고 이름은 한글로 적어내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교수가 획수가 많은 한자를 섞어가며 문장을 쓰기라도 하면 학생들은 이를 받아 적느라 그야말로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정신없이 바쁘다.

▲컴퓨터 도사 소리를 듣는 우리 대학생들의 현주소다.

어느 대학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관한 숙제를 냈더니 학생 20여명이 글자와 토씨까지 정확히 같은 리포트를 제출해, 이를 확인해 보니 관련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내용을 그대로 낸 것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자신이 제출한 리포트에 사용된 한자를 알지 못해 리포트의 주요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한자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다.

학생들 상당수가 일상적인 기본 한자를 알지 못하는 바람에 무엇을 설명하려해도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漢字로 옮기시오’라는 문제를 냈더니 이 문제를 읽지 못해 우리말로 답을 적어낸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한맹(漢盲) 사례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뿐이다. 한맹의 심각성은 비단 강의실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중국 등 인구 20억 명의 한자권 국가들과 교역하는 회사에서는 사원들에게 별도로 한자공부를 시켜야할 형편이라고 한다.

▲한자는 우리말 어휘의 70%를 차지하고 우리 문화유산의 정수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쪽 날개로 날을 수 없듯이 우리말을 제대로 쓰려면 한자를 이해하지 않고는 어렵다.

우리말을 아끼려면 한자를 사랑해야 한다. 요즘 한자학원이 생겨나고 아이들에게 한자를 교육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어린 시절, 한자를 쓰다가 필순(筆順)이 틀려 호되게 회초리를 맞았던 세대들에겐 요즘 대학생들의 한맹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