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북초등학교, 과거 100년을 넘어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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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주교육의 뿌리를 찾아서-북초등학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제주지역은 일제치하와 해방, 그리고 4·3 등의 영향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황폐화됐었다.

 

그러나 빠른 시일내에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되기 까지는 부모님 당신들은 정작 굶주리면서도 자식만큼은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교육열이 그 근간이 됐다.

 

제주일보는 2014년 갑오년을 맞아 현 제주 교육의 뿌리가 되는 일제 강점기 당시 제주 교육 현황에 대한 기획을 실시한다.

 

이 기획에서는 제주도교육청이 발간한 제주교육사를 근거로 1907년에 개교한 제주공립보통학교(현 북초등학교)를 비롯 정의군 성읍촌에 정의공립보통학교(현 표선교), 대정군에 세워졌던 대정공립보통학교(현 대정교) 등 1927년까지 세워졌던 도내 12개 보통학교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본도 최초의 공립보통학교

구한말 광무 12년(1907년) 당시 제주 군수 윤원구(尹元九)에 의해 1월 10일 북초등학교의 전신인 제주공립보통학교가 설치되고 그 해 5월 19일 개교됐다.(제주교육사)

 

개교 당시에는 총물당(摠物堂.구 제주대학병원 앞 건물. 제주군 제주면 삼도리 930번지)이었으며 2년 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초대 교장은 윤원구 군수가 겸직했으며 개고 당시 특별 보습과 2개 학급을 설치해 출범됐다.

 

당시 학제는 3년제로 1910년 3월에 제1회 졸업생 26명이 배출됐다.

 

1911년 조선교육령에 의해 북교는 4년제로 개편됐으며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에서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함에 따라 현재의 6년제로 개편됐다.

 

1938년 4월 조선교육령 개정에 의해 ‘제주북공립고등심상소학교’로, 1941년 4월에 제주북공립국민학교로 바뀌었다가 1951년 6월에는 제주북국민학교로 개명됐다.

 

▲일제 강점기의 북교

일제 강점기 도내에서 가장 큰 학교인 제주공립보통학교에는 교육을 통해 근대민족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학생들이 많이 재학하면서 1920-1930년대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 5월 25일 당시 학생들은 관음사에서 열린 사월초파일 행사에 참석, 돌아오는 길에 기습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매일신보 1920년 5월 31일자에는 ‘지난 이십오일에 제주공립보통학교 생도 전부가 이날은 음력 사월 팔일 즉 석가세존(釋迦世尊)이 탄일임으로 이 기회를 타서 해도에 창설된 관음사(觀音寺)로 원족(遠足)을 하얏는데 도라오는 길에 어린 생도들이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또 독립창가도 병창하얏는데 방금 동지 관헌이 취조하는 중이더라’ 라고 보도됐다.

 

이 사건 외에도 학생들은 외부 단체와 상급학교인 농업학교, 졸업 동문과 연결된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펼쳐졌다.

 

특히 1947년 3월1일에는 북교에서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렸는데 기념식에 앞서 미군정과 경찰은 이를 무산시키려 했으나 오전 11시전부터 3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탐라개벽 이래 최대의 인파’로 회자됐었다.

 

▲4·3사건과 6·25 격변기의 북교

4·3사건은 제주 교육계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

 

그동안 도민들의 정성으로 이뤄진 각급 학교 시설 상당수가 파괴됐으며 이로 인해 2부제, 3부제 수업이 진행되고 학생은 물론 교원 수도 크게 줄었다.

 

북교 역시 학교시설 파괴로 휴가가 불가피해졌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6.25 기간에 제주 교육계는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4·3사건 당시 파괴된 교육시설이 복구되면서 학생들의 학교 복귀 등 학업 정상화가 진행됐다.

 

특히 전쟁 중에 제주로 유입된 피난민 학생들의 교육문제 해결이 현안으로 등장했다.

 

초등학생 과정의 피난민들은 북교를 비롯한 도내 20개 학교에 분산 수용돼 교육을 받았는데 이들 피난민 학생을 ‘등록아동’으로 표기했다.

 

1950년 북교의 ‘등록아동’은 577명에서 1951년에는 432명, 1952년에는 240명으로 점차 줄어 들었다.

 

▲현재의 북교

개교 후 첫 졸업생은 26명이었다.

 

해방되는 1945년에는 31개 학급에 남학생 1136명, 여학생 867명 등 2003명으로 거대학교로 발전해왔다.

 

1980년에는 46개 학급에 3055명이 되기도 했었으나 19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400명 대로 크게 줄었다.

 

2007년 5월 19일 개교 100주년을 맞은 제주북초는 2009년에는 제2기 제주형자율학교(i-좋은학교) 지정에 이어 2011년에는 제3기 제주형자율학교로, 지난해에는 사교육 절감형 창의경영학교, 올해에는 사교육 절감형 창의경영학교 자율학교로 지정됐다.

 

과거 100년의 역사를 보낸 북교는 앞으로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미래 100년을 준비하며’를 교육의 방향으로 하는 북교는 ‘나날이 배워 익히고 날로 생각하며 새로워라(日 日學·日 日新)’을 교훈으로 미래 100년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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