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문화를 넘나드는 돌담 가운데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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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집 울타리 산담
     
     
   
제주도의 무덤이 한반도의 다른 지방과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산담이 있다는 것이다.

산담은 무덤 주위를 타원형으로 쌓거나 장방형으로 쌓은 돌담으로 망자(亡子)의 집 울타리로 인식된다.

산담은 영혼의 영역을 나타내는 일종의 경계를 표시한다. 산담을 경계로 산 자들의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가 구분된다.

밭이나 목장이 산 자들의 생활영역이라면 산담은 죽은 자들의 영역인 셈이다.

또 산담은 제주도 중산간 대부분이 방목지대인 특성을 고려해 소나 말의 침입으로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들불이 났을 때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도 한다.

세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제주에서 산담이 등장한 것은 조선 초기 유교식 상·장례가 자리잡은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5세기 한반도로부터 유교의 장묘문화가 건너와 화산섬이라는 제주의 풍토적인 요인과 목축이라는 산업적 이유가 만나면서 산담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다.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 소장의 연구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무덤은 다른 지역과 달리 경작지에 조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조상의 무덤을 일상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경제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제주인들에게 밭은 삶과 죽음의 현장인 셈이다.

제주의 묘지가 조성된 곳이 말과 소가 많은 목장지대, 화전이 가능한 들판, 경작하는 밭 등이 일반적인데 이곳들은 제주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삶의 현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산담은 단순하게 봉분을 두른 축조물을 지칭하는 것에 거치지 않고 봉분과 죽음의 관념을 포괄하는 일종의 공간지표이다.

또 산담의 공간은 청명, 한식날, 벌초, 묘제 등 산 자들에게 허용되는 특정한 날을 제외하고는 찾아갈 이유가 없는 금기의 공간이다.

산담의 형태는 외담(홑담)과 겹담으로 구분되며, 산담의 크기는 죽은 자의 생전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다.

타원형의 산담은 장사 치르는 당일에 쌓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 깊은 산중에서 돌을 구하기 힘들 때 외담 양식으로 쌓았다.

장방형의 산담은 겹담형식으로 산담은 무덤 앞쪽 길이를 뒤쪽보다 길게 쌓고 네 귀퉁이에 각을 살려 안담과 바깥담을 쌓은 후 그 사이에 잔돌을 채워 넣는다.

산담에는 신(神)의 출입문인 ‘신문(神門)’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 오래, 올레, 도, 시문이라고도 한다.

올레는 산담의 좌측이나 우측에 약 40~50㎝ 가량 길을 트고 그 위에 길쭉하게 다듬은 돌을 1~3개 올려놓는데 이를 정돌이라고 한다. 이는 제주의 전통 주택에서 올레에 통한 정낭을 연상케 한다.

시문의 위치는 망자의 머리를 중심으로 왼쪽에 위치하면 남자의 묘, 오른쪽에 있으면 여자의 묘인데, 성별에 따라 시문의 위치를 달리 두는 것은 음양론(陰陽論)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산담에 일정한 격식을 갖추고 시문을 두는 것을 보더라도, 죽은 사람도 산 사람처럼 삶을 살아간다는 내세관이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산담 네 귀퉁이에 세우는 귓돌은 정초석 역할을 하는 돌로, 산담의 중심을 잡아주며 사람들의 무덤 출입을 용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 망자의 입장에서 나쁜 방위 쪽에 ‘새각(邪氣)’을 방지하는 새각담을 쌓기도 한다.

제주의 산담은 중산간 개발, 화장과 자연장 등 장묘문화의 변화 등으로 인해 빠르게 훼손되거나 변화하고 있다.

이는 제주의 독자적인 경관 양식인 산담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파괴되는 것으로 제주의 돌담 문화 가운데 훼손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주 산담이 가지는 미학에 대해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 소장은 “산담은 아무렇게나 생각 없이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아니라 제주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조형물”로 “수백년 이어온 제주사람들의 미감(美感)과 풍토적인 정서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산담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이요, 선과 형태에 소홀함이 없는 우려함 때문에 조형주의라고 김 소장은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산담은 ‘시·공간을 넘어선 대지예술(Earth Art)’이라는 것이 김 소장의 설명이다.

현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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