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섬 안에서 멸치잡기로 유명한 곳은 애월읍은 곽지․금성, 한림읍 협재․금능, 조천읍 함덕․북촌, 구좌읍 동복․김녕․월정․행원․세화․하도, 서귀포시 보목․중문, 안덕면 화순․대평, 표선면 표선, 성산읍 신양, 제주시 이호동․삼양동 등이다.

 


우선 ‘멜-잡기’에 적합한 마을에서는 주민들로 접원接員을 구성하여 지인망地引網어법(=가후리어업)으로 멸치를 다량 잡았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된 후 거착선巾着船을 이용하는 발달된 선망旋網어업(두릿그물어업)에 의하여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 모두 잡아가니 ‘멜-잡기’는 사양斜陽산업이 되고 말았다. 곽지리 ‘멜-잡기’는 곧 중접․서접․모살접․신접 등 4개의 접으로, 이밖에 ‘진-모살’ 동쪽의 ‘소로기통-접’과 서쪽의 ‘석경개-접’ 등이 각각 있었다. 한 접의 인원은 60여 명, 한번 동원된 노동 인력으로 갖추기에 필요한 인원이었다. 여름철 오기 전에 각 접마다 돼지를 잡아 풍어제豊漁祭를 올린 다음 멸치잡기 준비를 서두른다. 각 접마다 접막接幕과 ‘개맛’, 그리고 테우 둘이 필요하고, 또 접마다 ‘그물-눌’이 있으며 멸치를 담아 헤아리는 휘<곡斛>를 갖추었다.

 


우선 접막은 접의 주요 문서와 작업도구를 둔다거나 환자가 잠간 머물거나 각 접장接長․공원公員․소임所任들의 회의장소이다. ‘개-맛’은 테우를 메어두는 구실을 하는 자그마한 포구이다. 이곳을 일러 모살동네 ‘우물-개’라고 하였다. 테우는 노련한 ‘멜-잡기’ 꾼을 태우고 바다 멀리 나가 멸치의 대세를 미리 알고 나서 지인망地引網 그물을 동진東陣 테우와 서진西陣 테우로 나누어 타고 신호를 보내면 그 그물을 동쪽 30명과 서쪽 30명이 맡아 에워쌓은 멸치를 힘껏 댕겨 멸치잡이를 한다. 다음 휘는 열 말 들이 큰되로 보면 이해가 쉽다. 한자로 ‘휘 곡斛’자는 ‘뿔 각角자’ 변에 ‘말 두斗’자를 부친 글자이다. 곧 휘는 네모진 큰 되 네모 바닥끝에 긴 나무를 나오게 하여 손잡기 좋게 만들어져 네 사람이 그 뿔처럼 된 나무를 잡아 동시에 가득 담아진 멸치를 들을 수 있게 된 그릇이다. 하루에 몇 휘를 잡았느냐 하는 것을 헤아리게 된다.

 


하기야 멸치 떼들이 많을 때만 오면 선진先陣과 후진後陣, 곧 두 접을 하루에 동원하여 일을 처리한다. 고로 선진은 그 날 곧 밤이 들 때에 ‘멜-잡기’를, 후진은 이튿날 이른 새벽에 시작한다. 멸치가 넘쳐 모두 퇴비로 대용하거나 이웃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을 쓴다. 멸치잡이를 끝나면 그물을 모래판에서 말리고 구멍이 있는 곳을 잘 꿰매어 모래판 위의 나무로 된 시설인 ‘그물-눌’ 위에 ‘촐-눌’ 두르듯이 휘감아 쌓아올려 이엉(=람지)을 덮어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한다. 멸치가 많이 잡히면 온 백사장이나 마을 큰길가로 옮겨 말린 다음 농토의 거름으로 사용하는데 남들이 “곽지리 풍어는 곧 마을의 풍년을 노래한다.”라고 그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멜치 후리기나 그물 잡아 댕기는 노동요도 있었으나 오늘날  채집 수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고인이 된 이남호李南浩가 69세 때 부른 ‘멜 후리는 소리’를 일부 옮겨 볼까 한다. 그는 바닷가의 ‘우물-동네’에 살아 매일 노래를 들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먼저 모래판 위에서 동진과 서진이 각각 밧줄을 댕기면서 “야! 동줄이여! 서줄이여! 이라. 당이라. 아이고! 소복 걸련? 멜 넘엄져! 멜 넘엄져! 어서덜 요 동줄 당기라, 섯줄 당겨라.” 또 “아이고! 이거 이거! 멜도 이거! 많이 들어노난, 멜 버치키여? 그물 깔지말앙 저 듸 개코만 부치라.” 또 “야! 이거 저 개코만 부치면 하영 먹엇저덜 부지런히 이라. 동줄이여! 동줄 이라. 이라. 섯줄이여! 이라. 이라. 야! 이거 막 멜 걸렴져! 이거 어디? 이거! 저 저 하영 걸련? 부치라! 부치라! 멜 막 넘엄저! 그리고 바다의 테우 위의 날랜 뱃사람들은 “어엿사나! 이어도사나! 어엿사나! 이어도사나! 땡기곡 밀곡 어서 가자. 어여차! 디여차! 에야디야! 어서 가자. 잘도 간다. 앞으로 물걸렁 어서 땡기곡 어서 밀어라. 잘도 간다. 소임들아! 어서어서 멜 저디? 암저! 공원들아! 저기? 저 막으라, 막으라! 어서 젓으라. 젓으라! 네 젓으라.”라고 불렀다.